'군인권보호관' 한계 안은 채 출발

2021-12-10 11:57:49 게재

근거조항 마련 후 5년 만에 제도 도입 … '불시조사권'은 축소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군인권보호관을 두도록 하는 인권위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군인복무기본법에 군인권보호관을 두도록 명시했지만 하위법령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방치된 지 5년 만이다. '윤 일병 사건'부터 최근 고 이예람 중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군대 내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희생 끝에 마련된 제도이지만 출발부터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위법 개정안을 보면 인권위는 군 인권침해 예방과 인권보호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인권보호위원회를 두고 그 위원장은 군인권보호관이 맡게 된다. 인권위 상임위원 3명 중 대통령이 지명하는 상임위원이 군인권보호관을 겸직하기로 했다. 군인권보호관은 군부대를 방문해 조사할 수 있는데 해당 군부대의 장에게 취지와 일시 등을 사전 통지해야 한다. 다만 긴급을 요하거나 미리 통지시 목적달성이 어려운 경우 국방부 장관에게만 통지할 수 있도록 했다. 국방부 장관은 군인이 복무 중 사망한 경우 즉시 인권위에 통보해야 하고, 인권위는 해당 사건 조사 또는 수사에 군인권보호관과 직원 입회를 요구할 수 있다.

처음 논의가 시작된 시점부터 따지면 군인권보호관 제도는 7년 이상 묻혀 있었다. 2014년 제19대 국회에서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인권위에 군인권보호관을 두기로 했지만 군인복무기본법 제42조에 근거조항을 마련한 것 외에 세부 입법이 이뤄지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왔다.

수면 아래 놓여 있던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빛을 보게 된 데에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고통이 있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육군 하사는 지난해 1월 '심신장애'를 이유로 육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했다. 법정다툼 끝에 강제 전역 결정은 위법이라는 판단을 받아냈지만 변 하사는 이미 세상을 등진 후였다. 상사의 성추행과 조직내 은폐 및 2차 가해에 시달리던 이예람 공군 중사는 지난 5월 세상을 떠났다. 고 이 중사의 아버지는 딸 사진을 가슴과 등에 걸고 1인시위를 하고 군인권보호관 설치를 논의하는 국회의원들에게 호소문을 전달하며 제도 도입을 요청했다.

이처럼 어렵사리 도입된 제도이지만 실효성 측면에선 벌써부터 회의적이다. 가뜩이나 폐쇄적인 군의 비협조적 태도를 고려할 때 적절한 권한 확보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군인권보호관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핵심은 군인권보호관을 맡은 인권위 상임위원 1명 증원, 불시부대방문조사권, 수사 중 자료 제출 요구권 보장 등이었다"면서 "국방부는 7년 동안 모두 반대하면서 방해해왔는데 인권위는 결국 국방부 반대를 모두 수용해 국방부 입맛에 맞게 권한 축소에 동의해줬다"고 비판했다.

앞서 군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은 국회에 제출한 군인권보호관 입법 관련 의견서에서 "군인권보호관은 군에서 발생한 끔찍한 죽음들을 교훈으로 만드는 자리"라면서 "불시방문조사권, 수사중 자료 제출 요구권 확보 등이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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