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 시행

피고인이 '내용부인' 한 검찰조서 증거 인정 안돼

2021-12-28 11:39:06 게재

형사소송법 개정안 내년 1월 1일 시행 … 영상녹화물 증거능력 인정 등 대안 필요

개정 형사소송법(312조 1항)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된다.

기존에는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가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돼 있다는 사실이 피고인 진술에 의해 인정되고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된 경우에는 증거능력이 인정됐지만, 앞으로는 재판에서 피고인이 진술 내용과 다르다고 주장할 경우 경찰 조서와 마찬가지로 검사 작성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이 부인된다.

사법정책연구원(원장 홍기태)은 지난 10월 29일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와 한국형사법학회(회장 김혜정), 대법원 형사법연구회(회장 고연금)와 함께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과 형사재판'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사진 사법정책연구원 제공


◆공범 많은 복잡사건 장기화 전망 = 이로 인해 공범이 많은 복잡한 사건의 경우 재판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 앞으로 검찰 수사단계에서 확보한 진술증거만으로는 수사기관이 유죄 판결을 확신하기 어려워진다. 법조계에서는 특히 진술증거의 의존도가 높은 사기사건이나 공범이 많은 사건, 뇌물 등 부정부패 사건 등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피고인이 조서 내용을 부인해 증거능력이 없어지면 참고인(증인)을 불러 피고인 혐의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법정에서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검찰 조사 때 이미 물었던 피고인 신문을 되풀이해야 하기 때문에 공판이 길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 조사 당시 혐의를 부인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경우에도 피고인 혐의에 일부 부합하는 진술이 남아 있을 수도 있는데, 검사가 작성한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이 상실되고 피고인이 법정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 검찰 조사때 나온 일부 부합 진술을 다시 얻어내기 어렵다는 점도 혐의 입증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천 변호사 설명이다.

법무법인 해율 이충윤 변호사(전 변협 대변인)는 "예컨대 뇌물죄와 같은 성질의 범죄는 상호 진술로 범죄가 입증되는 경우가 많은데, 검사 작성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면 공판단계에서 실제로 입증하기 까다로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충분한 객관적 증거 없이 사실상 자백만으로 기소하는 사건이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판사의 피고인 신문 및 재판진행 역량이 보다 높아져야 한다. 특히 형사단독 판사들의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조사자 증언 제도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전에 거의 활용되지 않았고, 현재 준비도 미흡하다"며 "피고인의 내용부인만으로 수사와 조사 전 과정이 사실상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얻은 진술을 증거로 현출할 수 있는 입법적 대안을 찾지 않으면 법원 등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변화 크지 않을 것" =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과 검찰이 이 부분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확정한 대안은 아직 없다.

다만 대법원은 다년간에 걸쳐 공판중심주의 강화 조치가 진행됐기 때문에 큰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개정법 시행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규칙 일부 조항과 공판조서 가운데 증거조사와 관련있는 예규 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재판이 장기화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신속처리절차를 도입해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투 트랙 전략을 검토 중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개정법 시행에 따른 변화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문제되는 경우는 검찰 단계까지 자백하다가 법정에서 부인하는 사안인데, 그 수가 많지 않다. 수사기관도 객관적·과학적 증거를 충실히 수집해 제출하는 등 개정법 시행에 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도 재판에서 피고인이 조서 인정을 안 하면 관련 증인을 다 부르는 등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재판부가 심증을 형성한다"면서 "지금도 검사 작성 피신조서에 대한 진정성 여부는 다 판사들이 하는 것이며, 보충적으로 고려할 뿐 의존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재판 장기화 우려 등에 대해서는 "2008년 형사소송법 제312조 개정 때도 우려와 달리 형사재판 심리기간에 큰 변동이 없었다"며 "(오히려) 검찰 피신조서의 실질적 진정성립 여부 등에 관한 무익한 공방이 생략되면 심리기간이 단축되는 측면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만 "공판절차에서 다툼이 늘고 통상적인 처리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있다"며 "통상처리절차와 신속처리절차의 투 트랙으로 공판절차를 설계하고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법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행정처, 형사소송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피고인이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재판에서 부인하면 그 진술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도록 하는 개정 형사소송법(내년 1월 1일 시행)에 맞춰 형사소송규칙 일부 개정안을 지난 10일 입법예고했다.

종전 형사소송규칙 134조 제3항은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을 두고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진술 내용과 다르다'는 주장을 할 경우 어떤 부분이 진술과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 구체적으로 지목하게 했었다. 이번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은 이 조항의 삭제를 골자로 한다.

새로운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은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바뀐 규정은 개정안 시행 후 기소된 사건에만 적용되고 이미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건에는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

일선 법원들은 바뀌는 형사소송제도에 따라 형사재판부 증설을 검토중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구체적인 것은 내년 2월 인사가 이뤄지는 시점이지만 각급 법원별로 형사부 증설에 대한 수요를 조사중"이라며 "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서울고법은 형사부 5개, 서울중앙지법은 10개 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대검 "수사공판 역량 강화" = 대검에서는 6월 출범한 '국민 중심 검찰 추진단'이 여러 제도 개선안과 함께 이 부분에 대한 대응방안도 준비 중이다.

법무부는 대검과 함께 검찰 업무량을 분석하고 내부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검찰 공판 역량 강화 방안 등을 함께 모색해왔다.

이에 따라 법무부와 대검의 대응도 수사역량과 공판역량을 각각 강화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좁혀지고 있다. 수사단계에서부터 진술증거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치밀하게 수집하고, 이를 위해 조사범위를 확대할 여러 방안과 지침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수사단계에서는 △진술증거의 기록방식 다각화 △비(非)진술증거의 폭넓은 활용 등이 큰 방향이다. 공판단계에서는 △조사자 증언 활성화 △피고인신문 절차 활성화 등의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조사자 증언은 피고인을 수사한 조사자가 법정에 증언자로 나오는 제도로 2007년 형소법에 도입됐다. 그간 활용도는 높지 않았지만 피신조서 증거능력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검 관계자는 "형사소송법 개정과 공판중심주의 강화에 대응해 디지털포렌식 도구 기능 개선을 위한 연구비를 투입하는 등 증거의 증거능력 및 증명력 강화 등 수사공판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완책 필요성 제기 = 개정법은 피고인의 방어권과 공판중심주의 강화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실체적 진실 발견 등 범죄사실 규명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 만큼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사법정책연구원은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형사법학회, 대법원 형사법연구회와 함께 10월 29일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과 형사재판'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상훈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발표를 통해 "개정법 시행으로 공판중심주의와 구술주의의 실천에 더욱 근접할 수 있지만 재판 효율 저하가 불가피해 심리 장기화 등 사법비용의 증가가 예상된다"며 "경미한 사건의 신속처리절차 도입이나 구속기간제도 정비 등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 수사만으로 수사가 종결돼 검찰 피신조서가 작성되지 않는 사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조서를 간이화하는 대신 조사자 증언의 특신상태 입증을 위해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나 수사 과정의 영상녹화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모성준 대전고등법원 판사는 이날 토론에 나서 "수사기관이 확보한 증거의 효력이 전적으로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등 재판 진행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며 "피고인의 개별 변소(항변)에 대해 문답으로 진실을 밝혀야 하는 책임은 온전히 법원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선일 오승완 안성열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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