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우수고교에 가다 | 경기 한민고

단계적 교육과정으로 배움의 깊이 더한다

2021-12-29 11:40:26 게재
경기 한민고는 군 자녀를 위한 기숙형 일반고로 2014년 설립됐다. 개교 당시부터 한민고 교사들이 주력해온 것은 교과 경계를 허무는 융합수업이다.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 들어오면서 한민고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단계적 교육과정의 구현이었다.

1학년은 공통과목을 통해 기본 소양을 쌓고 2학년은 관심 분야의 학습과 탐구 활동을 거치며 3학년은 학생마다 도전할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편성 방향을 잡았다. 단계적 교육과정의 내실화를 위한 촘촘한 설계는 배움 중심 수업 문화를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했다. 3학년에 개설된 선택과목 수업들이 수능 직전까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이유다.
학생들이 원하는 실험을 선생님의 지도 하에 직접 해볼 수 있고,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분석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었다. 사진 이의종


◆개교 당시부터 주력해온 융합 수업의 유기적 확장 = 개교 당시 융합 수업을 정규 교과에 개설하면서 역사과목을 담당하는 천왕성 교사는 시대별로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주요 주제들을 선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다음은 여러 교과 교사가 수업을 함께 맡는 '팀 티칭' 으로 이어갔다. 선사 시대를 다룬다면 인간이 문명화되어가는 단계 속에서 무엇이 인간다움을 보여주는지를 주제로 선정, 타 교과 교사들과 공유했다.

수학과에서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기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 과학과에서는 도구를 고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사회과에서는 인식론점 관점에서 인간의 인식 과정이 다른 동물과 어떻게 다른지를 학생들에게 화두로 던져줬다.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들 = 학생들이 과제 연구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연구한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은 학술제로 마련했다. 연초 참가신청을 받아보니 200개가 넘는 주제가 모였다.

역사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탐구 활동이 역사적 사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데 그치는 게 아쉬워 역사를 만들어 보는 작업을 해보자고 권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 중 기록의 가치가 있는 것들을 선별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학생들은 코로나 시국에서 학교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했는지 정리해나갔다.

이같은 탐구 활동을 경험한 학생들은 3학년에 개설된 다양한 진로선택 과목들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학생들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교과별 과목과 단위가 있기 때문에 3학년을 도전하는 교육과정으로 편성하려면 절충안이 불가피했다. 학기 집중 이수를 통해 '수학Ⅰ'을 1학년 2학기, '수학Ⅱ'는 2학년 1학기, 과학 Ⅰ과목은 2학년 1학기, 과학 Ⅱ과목은 2학년 2학기 선택군으로 편성했다.

◆연계 교과 효율성 높인 교육과정 = 현재 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교육에도 일찌감치 공을 들였다.

인공지능 교육과정을 맡고 있는 정보 담당 남상천 교사는 "학생들이 꼭 이 분야로 가지 않더라도 앞으로 정보 사회에서 쓰이는 도구들이 어떤 건지 접하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프로그래밍실습Ⅰ'을 개설, 지정 과목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이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정보과학'과 '응용프로그래밍개발' 등의 과목으로 이어간다"고 전했다.

전문 교과인 '고급수학Ⅰ·Ⅱ'의 운영도 남다르다. 수학을 특별히 좋아하고 잘하는 학생들 외에도 '정보과학'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이수를 권장한다.

현재 일반 수학 교과에서 인공지능에 필수적인 행렬이 빠져 있는 만큼 이를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1, 2학년 때 이미 언어를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우고 왔기 때문에 수업 내내 소프트웨어를 함께 쓴다. 알고리즘을 짜보거나 생각한 내용을 구현해 과제연구에 활용하거나 관심 분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접목하는 식이다.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학교 교육과정과 수업의 본질을 추구하되 뒤처지는 학생들까지 배려한 설계는 정시 확대 기조 속에서도 교육과정의 틀이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됐다.

정애선 내일교육 기자 as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