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장애인 놀이부터 교육·건강까지 챙긴다

2021-12-31 10:57:40 게재

서울시 '틈새 복지' 확대

전 연령대 맞춤형 서비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주민 ㄱ씨에게 최근 집만큼이나 편안한 공간이 생겼다. 매일같이 방문해 요리를 하고 식물을 키우는가 하면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자극하는 체험활동에 푹 빠져있다. 오랜시간 휠체어에 앉아있거나 음식물 삼키기를 힘들어하는 그를 위한 맞춤형 지원도 여럿이다. 덕분에 보호자 ㄴ씨는 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ㄴ씨는 "잠시 돌봄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을 할 수 있어 아주 만족스럽다"며 "부양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말했다.

마포 뇌병병장애인 비전센터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옥상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돌봄체계 개편, 종합서비스 = 서울시가 상대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뇌병변장애인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를 확대, 호응을 얻고 있다. 뇌병변장애는 뇌졸중이나 뇌손상 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장애다.

서울시는 영유아기부터 비장애 아동과 함께 놀이를 즐기도록 무장애 공간을 마련하고 학령기가 지난 성인도 언어능력을 키우도록 자원을 연계한다. 돌봄 교육 건강 서비스를 한곳에서 제공하는가 하면 중장년층까지 대변흡수용품을 지원하는 등 전 연령대에 걸친 서비스다.

조명기구와 물기둥 등 시각 촉각을 통해 심리안정과 휴식을 돕는 심리안정실은 장애아 비장애아 모두에 인기다. 사진 서울시 제공

시에 따르면 매년 뇌병변장애인 200여명이 고등학교나 특수학교 등 전공과를 졸업하는데 절반에 가까운 48.8%는 미진학·미취업 상태다. 전용시설 13곳이 있지만 대부분 서비스가 학령기에 집중돼있어 졸업 후에는 이용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온종일 가정에만 머물면서 사회성은 물론 정신·신체 건강까지 퇴행하기 일쑤다.

서울시는 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해 전문가와 시설·단체 등이 참여한 가운데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26개 사업을 구체화했다. ㄱ씨가 날마다 찾는 마포 뇌병변장애인 비전센터도 그 중 하나다. 기존 돌봄체계를 바꿔 교육과 건강까지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특화시설을 지난 3월 마련했다.

학업 보완이나 문화 체육 예술 등 활동에 대한 욕구를 반영, 18~64세 시민들이 최대 5년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문자해득이나 직업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은 기본. 인문교양 문화예술 시민참여 교육을 비롯해 일상생활 수행능력 증진까지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감각활동과 요가·명상 특수운동 표현예술 음악·연주 등 선택과목도 있다.

사지마비나 와상 등 중증인 경우 상주하는 간호사가 하루 두차례 활력징후를 살피고 2주에 한번씩 몸무게를 측정, 체중관리를 돕는다. 이용자들은 휠체어 이동 반경을 고려한 설계부터 몸이 많이 아플 때 쉴 수 있는 침대, 높낮이 조절 세면대 등 세심한 배려가 담긴 공간 구조 자체에 만족감을 표한다.

서울시는 매년 두곳씩 비전센터를 조성, 총 8곳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지난 7월 구로구가 공모에 선정됐고 현재 추가 공모도 마무리단계다.

◆성인도 언어치료 지원 =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사회참여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맞춤형 지원도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뇌병변을 비롯해 발달 청각 시각 언어 등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큰 장애인은 17만6872명에 달한다. 전체 등록장애인 가운데 44%를 차지한다. 특히 뇌병변장애인 등은 입말을 통한 의사표현에 제약이 있어 교육 일자리 대인관계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시는 '장애인 의사소통 권리증진센터'를 마련해 장애인은 물론 가족과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등 주변인까지 지원하고 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에서 운영을 맡아 장애 유형별 맞춤형 의사소통을 지원하고 인식개선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거나 관련 기관 이용을 희망하는 시민들 신청을 기본으로 한다. 통상 가족이나 활동지원사 등이 신청을 하면 초기상담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을 파악한다. 단순 정보제공 이상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개별지원계획을 수립해 집 근처에서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이나 전문가를 연계한다. 센터 관계자는 "발음이 잘 안되거나 눈짓 몸짓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경우 언어치료가 필요한데 법적으로 학령기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서울시는 성인 대상으로 의사소통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치료비를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내에 의사소통 환경을 구축할 방침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장애인 당사자 모임부터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등 지원단을 양성하는 방식이다.

◆통합 놀이방에서 사회성↑ = 0~4세 장애 영유아 898명 가운데 뇌병변은 367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언어·자폐성 장애가 그 다음인데 120명 가량이다. 하지만 뇌병변 영유아는 재활치료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또래와 놀이를 통해 창의성과 자기표현능력 문제해결능력 사회성 등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

약 10% 가량은 유아교육기관에도 다니지 못하고 일반 놀이방은 공간이 비좁고 편의시설이 부족해 안전상 문제가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학교에서는 장애·비장애 학생을 분리하기 때문에 어울릴 기회가 드물다"며 "보호자들은 뇌병변 영유아가 안전한 공간에서 비장애 영유아와 함께 활동하길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시는 치료보다 놀이에 무게중심을 둔 장애·비장애 통합 놀이방을 마련했다. 영등포구 대림3동 '맘든든센터'다. 5세 미만 영유아와 부모가 함께 이용하는 공동육아방인데 시는 이를 열린 놀이방으로 꾸몄다. 일반 놀이방보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휠체어 등 이동에도 걸림돌이 없도록 무장애 구조로 조성했다.

화장실에는 샤워침대를 비치했고 수유실을 비롯한 곳곳에 휠체어 보관 공간을 확보했다. 놀이를 통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특히 시각 촉각 등을 활용해 심리안정과 휴식을 돕는 '심리안정실(스누젤린실)' 활동에 대한 반응이 좋다. 비장애 영유아도 어려서부터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에는 대소변흡수용품을 지원한다. 일상의 불편함에 경제적 부담이 더해지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다. 올해는 3세부터 54세까지 서울시장애인복지관협회를 통해 구입비 50%까지 지원했는데 내년에는 64세까지 대상을 확대한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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