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①

사고와 안전에 대한 오해와 편견

2022-01-18 11:29:54 게재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시행된다. 소관부처, 기업, 학계, 안전보건 시장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모두가 대책 마련에 머리를 싸매고 있고 그 여파로 산업안전보건 전문가 수요도 크게 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컨벤션 효과가 상당하다.

대한민국의 GNI(국민총소득)는 벌써 몇해 전 세계 7위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산업재해 사고사망만인율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세월호 대참사, 제천 사우나 화재, 태안화력발전소 산재사망, 이천 물류창고 화재 집단사망 등 사고들이 잇따라 터졌다. 범국민적인 안전에 대한 요구가 중대재해처법법 제정의 동력이 됐다.

산업안전보건법으론 부족하다?

1981년도에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시행 후 최고 연 3300명 규모의 산업현장 사고 사망자수를 1000명 이하로, 현재도 산업현장의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역할하고 있다.

그러나 산안법이 가진 구조적 한계, 제도 운영의 문제는 심각했다. 산재 상해사망 사건의 경우, 벌금액이 개인은 421만원, 법인은 448만원 수준이다.(2013~2017년 평균, 산업안전보건법상 위반 사건의 제재에 대한 인식조사, OSHRI 2019) 기업에게 '안전제일'이 구호를 넘어 실행기준이 되도록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안전사고는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다.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 가능성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노동현장의 경우 생산과정에서 사고 가능성이 발견되면 생산 차질을 감수하더라도 사고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의사결정은 경영적 차원에서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중대재해처법법의 입법 취지는 재해예방을 위한 기업 최고경영자의 관심과 기여를 끌어내는 것이다. 영국도 이와 유사한 인식으로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 제정돼 2008년 4월부터 시행됐다.

산업안전 분야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노동자들의 사고예방에 크게 기여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법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각계각층에서 여전히 제도의 보완과 운영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사회정서에 고착화된 사고와 안전에 관한 오해와 편견이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예측과 예방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오해는 사고발생 후 해당 기업을 향한 팩트를 놓친 언론보도를 시작으로 국회의 대정부 압박, 정부의 기업 압박, 거기에 당황한 기업이 허둥지둥 내어놓는 부적절한 대응으로 연결된다.

현장 점검만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를 예측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이는 주로 후견편향(Hindsight bias) 즉, 어떤 일이 일어난 뒤에 마치 자신이 그 일이 그렇게 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으로 착각하는 편향에 기인한다. 이 편향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피시호프가 1972년 사회적 실험을 통해 이것이 사람들의 보편적 편향임을 증명한 바 있다. 이 대목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는 그 편향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보편적이고 기존의 행정과 기술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해결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일어날 줄 알았다'는 사후편향 경계해야

최근 한 대형 공사현장의 사고를 다룬 뉴스에서도 이런 편향은 여지없지 작동됐다. 사고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인데 마녀사냥처럼 며칠 전부터 사고가 예측됐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진다. 이런 사후편향의 부작용은 대한민국의 산업안전보건에 많은 자원낭비와 왜곡, 비효율을 만들어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산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전선에 있는 기업과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해법에 치중해왔다. 산재는 인류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됨에 따라 나타난 일종의 사회현상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려면 사회 각계각층에서의 기여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앞으로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 산업재해 사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집단의 문제점과 접근방향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모든 문제는 문제로 인식되는 것이 그 해결의 시작점이다.

[관련기사]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논란- 인터뷰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중소기업 안전역량 강화에 집중해야"
"중대재해법, 중소기업에 처벌 집중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