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논란- 인터뷰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중소기업 안전역량 강화에 집중해야"

2022-01-18 11:29:54 게재

공포마케팅에 처벌회피 급급, 로펌 '돈벌이' 전락 … 반짝 효과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배경은 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다. 그동안 실무자만 처벌되고 경영책임자가 처벌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많았다. 기존의 안전보건관계법과 그 집행에 대한 불신과 입법 포퓰리즘이 합작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면개정을 졸속으로 개정한 것도 산안법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14일 만난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이 우리나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모티브가 되긴 했지만 체계와 내용에서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전세계에서 유일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며 "문명국가 중에서는 처벌의 수준이 가장 강한 법"이라고 말했다.

법조계는 기존 안전관계법과 중복되거나 충돌되는 내용이 적지 않고 이 법들과 비교할 때 강하게 처벌할 규범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위헌 시비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진우(54)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서울대 치의대를 수료하고 행정고시를 거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 분야를 두루 거쳤다. 일본 교토대 법학석사, 고려대 경제학석사, 법학박사를 마치고 서울과학기술대로 옮겼다. 사진 한남진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산안법과 같은 예방법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최근 현장에서는 산재예방이나 안전문화와 같은 말이 자취를 감췄다. 법 기술이 실질적 안전을 삼켜버렸다.

정부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형로펌이 행동대장 역할을 하면서 기업들은 온통 처벌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안전역량이 되레 떨어질 것 같다는 우려가 크다. 안전에 문외한인 로펌들이 물을 흐리는 측면이 크다.

■이 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법규에서 예측 가능성과 준수 가능성은 생명과 같다. 법치주의의 근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법은 이런 기본적 가치를 무시한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사항이 매우 많다.

전문가조차도 누가 어떤 안전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합리적인 해석기준을 찾기 어렵다. 준법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이 법을 온전히 준수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재해예방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법이 불명확하다 보니 대형로펌의 공포마케팅에 쉽게 넘어가 안전역량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실한 보고서에 엄청난 돈이 낭비된다. 오죽하면 세간에서 이 법을 '로펌 복지법'이라고 하겠는가.

■중대재해를 줄이는 효과가 없다는 얘기인가.

예방기준이 정교하고 세련되게 규정되지 않으면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지속적인 효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반짝 효과로 '군기'가 잡히는 것도 대기업이나 원청업체 이야기다.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들은 사실상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처벌이 기득권에서 비켜나 있는 중소기업에 집중될 것 같다.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건데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

원청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라는 식이다. 전문적인 일까지 작업방법, 작업계획을 원청이 작성해야 한다거나 하청노동자의 작업행동에 대한 지휘감독까지 원청이 다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청에 대해선 사실상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 않다.

원청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부과해야 한다. 하청도 산재예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도외시하면 안된다. 중소업체가 큰 업체에 하청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청이 크고 하청은 작으니 원청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이분법적 접근이다. 이런 접근으론 비용만 많이 들어갈 뿐 하청노동자의 재해를 줄일 수 없다.

■대기업들이 안전역량 향상보다 형사처벌만 피하려 한다는데.

예측 가능성이 부족하고 이행하기 어려운 사항을 갑자기, 그것도 엄벌을 배경으로 강요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안전역량을 높여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산인 것 같다.

법에서 의무화한 안전보건 관리체계라는 것은 짧은 기간 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건도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기준과 맞지도 않은 내용을 당장 몇달 안에 구축하라고 하니 대다수 기업이 형식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정부 해설서에 모호한 부분에 대해 설명이 없는 것도 이런 대응을 부채질하고 있다.

■법 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손질할 게 많다는 건가.

강한 처벌이 수반되는 법을 관계 전문가 참여 없이 번갯불에 콩 볶듯이 제정한 것 자체가 놀랍다. 21세기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이 법의 상세한 내용을 잘 몰라서 그렇지, 법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멘붕'에 빠지게 된다.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고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법집행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들이 자포자기하는 이유다. 이 법을 그대로 두면 산업현장에서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안전원리가 뒤틀리고 가뜩이나 낮은 안전 규범력이 땅으로 추락할 것이다. 실질적 법치주의와 안전의 실효성을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안법과 함께 다시 설계돼야 한다.

■효과적인 중대재해 감소방안을 제언한다면.

무엇보다 예방기준의 실효성과 정교성을 높여야 한다. 예방기준이 엉성하면 처벌수위를 아무리 올려도 처벌할 수 없다.

법의 예측 가능성과 준수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형식적으로 지키는 척만 하지 실질적으로 준수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을 것이다. 법을 위반하면 수치심을 느끼게끔 법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재해에 취약한 중소기업의 안전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부가 단기간 실적에 매달리다 보니 이런 사업이 많이 부족하다. 이래서는 행정에 의한 산재감소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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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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