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연, 지구 가장 추운 곳에 간 이유

"기후변화기록 120만년 전까지 복원"

2022-01-24 11:14:28 게재

러시아연구팀에 참여

극지연구소(소장 강성호)가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에 갔다. 러시아연구팀과 함께 120만년 전까지 기후변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극지연구소는 "허순도 책임연구원이 남극 보스토크기지에서 진행 중인 심부빙하 시추에 참여한다"고 21일 발표했다. 러시아 보스토크기지 연평균 기온은 영하 55도로 지구상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남극점 연평균 기온 영하 49도보다 낮다. 1983년 7월에는 영하 89.2도가 관측된 기록이 있다. 인류가 직접 측정한 최저기온이다.
허순도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이 남극 러시아 보스토크기지 인근 3340m 깊이의 심부빙하 시추공에서 꺼낸 2m 길이의 빙하코어를 들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제공


극지연구소는 2020년 러시아극지연구소(AARI)와 공동연구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번 연구에 이어 내년부터는 보스토크기지 인근에서 러시아와 함께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얼음을 목표로 심부빙하 시추도 추진할 계획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기지가 있는 지역은 두께 3700m 빙하와 빙하 아래 위치한 호수(빙저호) 보스토크호가 있다. 빙저호는 수백~수천m 두께의 빙하 아래에 있어 외부와 차단된 채 오랜 시간 진화과정을 거치며 독특한 생태계가 발달했다. 보스토크호는 수도권 면적과 비슷한 넓이로 빙저호 중 가장 넓다. 1990년대에는 이곳에서 러시아와 미국 프랑스가 공동으로 3700m 깊이까지 빙하를 시추(5G 시추공)했는데, 빙하시추 역사상 최대 깊이로 기록돼 있다.

연구소는 "최근 러시아가 남극 돔C(Dome C) 빙하에서 확인된 80만년 전보다 더 오래된 과거 기후를 복원하기 위해 5G 시추공을 다시 시추하기로 했다"며 "3300~3610m 깊이가 대상이며, 이 구간 빙하에는 50만~120만년 전 흔적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남극 심부빙하시추는 대부분 약 10년간 진행하고, 후속 시추는 잘 진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스토크빙하는 1970년에 처음 시추를 시작한 후 빙하코어 이외에 하부에서 발견된 거대한 빙저호에 대한 연구도 계속 이어진 특별한 곳이다. 시추작업은 12명의 전문가가 팀을 나눠, 3교대로 24시간 연속 진행할 예정이다. 허순도 책임연구원은 지난 4일 기지에 도착했다. 허 연구원은 이번 연구에 참여한 유일한 외국인이다. 남극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을 포함, 20년 이상 다양한 극지 현장과 고산빙하 탐사를 경험했다.

그는 "3300~3610m 깊이를 다시 시추하는데 이 구간 빙하는 50만~120만년 전에 내린 눈이 쌓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빙저호 퇴적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퇴적물 파편들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허 연구원은 "이번 연구로 과거 기후변화 기록을 120만년 전까지 복원하고, 빙저호의 지질과 미생물도 밝히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강성호 극지연구소장은 "지금 남극에서는 '가장 오래된 얼음 찾기'를 두고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며 "극지연구소는 다른 나라와 협력을 통해 시추기술을 확보하고, 과거 기후 기록을 복원해 미래 기후변화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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