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폐쇄 6년

"빨리 포기하지 못한 게 한" … 그들에겐 희망고문 6년 이었다

2022-02-15 10:51:43 게재

100억원 이상 투자, 남은 건 빈손 … 자살시도·신용불량자·대리운전 내몰려

헌법재판소 '정부 불가피한 조치' … "앞으로 남북경협하지 말라는 이야기"

설을 앞둔 2016년 2월 10일. 박근혜정부는 갑자기 개성공단 폐쇄를 발표했다. 개성기업들에게 사전 통보도 없었다. 원부자재 완제품 설비 등을 회수할 시간은 반나절뿐이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트럭과 승용차 지붕 위까지 실었다.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 기업들도 있었다.

"국가를 믿고 전재산을 투자했는데 대통령 한미디로 전재산을 날렸다. 책임지지 않는 정부가 원망스럽다." 강창범 오오엔육육닷컴 대표는 6년전 그날만 회상하면 분통이 터진다. 강 대표도 완제품 53만장을 공장에 놓고 몸 만 빠져 나왔다. 완제품 가격만 53억원에 이른다. 고정자산 피해는 70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10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개성공단기업협회가 개성공단 전면중단 6주년을 맞아 생존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정부가 인정한 유동자산 피해금액은 43억원이었다. 지금까지 피해보상금으로 지원받은 건 38억원이다. 보상금 대부분은 거래처 원부자재 대금과 직원 인건비로 지출했다. 강 대표에게 남은 건 거의 없었다.

◆온라인브랜드 1위 몰락 = 강 대표가 설립한 오오엔육육닷컴은 개성공단 입주 직전 5년간 국내 숙녀 정장·캐주얼 온라인브랜드 1위였다. 중국 18곳에 하청 생산공장을 두고 매출 160억원을 올리는 의류업체였다.

중국 위엔화 환율과 인건비가 치솟자 대체생산지를 찾다 개성공단 입주를 결정했다. 2008년 전 재산을 개성공단에 쏟아 부었다. 시설투자비만 100억원에 달했다. 2013년 처음으로 2억원 가량 흑자를 냈다. 그해 6월 개성공단이 6개월간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피해액은 40억~50억원 가량이다. 재가동 한 2014년과 2015년 20억원씩 흑자를 냈다. 개성공단 폐쇄 직전에는 매출이 100억원 안팍까지 올랐다. 대부분 자체 쇼핑몰 판매로 일궈낸 성과다.

개성공단 폐쇄는 그에게 날벼락이었다. 갑작스레 모든 것을 잃었다. 강 대표는 일단 국내 사무실에 남아있던 옷들을 팔며 개성공단이 열리길 기다렸다. 제품 생산 중단 시간이 길어지자 쇼핑몰 고객들이 떠났다.

그는 다시 쇼핑몰 재개에 힘을 집중했지만 쉽지 않았다. 회사 직원들은 모두 떠났다. 매출이 없어 은행 대출 원금상환과 이자를 내지 못해 신용등급이 급락했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건강도 나빠졌다.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스트레스에 의한 난청이다. 강 대표는 여전히 개성공단이 열리 길 기다린다. 개성에는 강 대표의 청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해외 대체공장 채산성 안나와 = 개성공단기업들 삶은 대부분 강 대표와 비슷하다.

속옷 제조업체 영이너폼도 2008년 개성에 새공장(5950㎡)을 가동했다. 회사는 공단 폐쇄 직후 여기저기서 80억원을 끌어들여 서둘러 중국과 베트남 등에 대체공장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해 20억원 넘게 손실을 봤다. 거래처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보상해야 했다. 금형제작 등에 많은 자금이 들어갔다. 현지 근로자 대부분이 북한 근로자에 비해 숙련도가 떨어지고 언어와 문화 장벽이 커 채산성을 악화시켰다.

의류업체 D사도 2008년 개성공단에 입주했다. 폐쇄조치로 22억원 가량의 피해를 봤다.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피해액은 9억원에 그쳤다.

공단폐쇄 직후 베트남에 생산라인을 구축했지만 품질은 떨어졌다. 생산에 착수해 완제품을 국내에 들여오기까지 2개월 이상이 걸렸다. 1일권인 개성공단에 비해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개성공단에 맞춰 계약한 발주물량은 모두 적자였다. 베트남공장에서는 근본적으로 수익을 맞출 수 없었다.

폐쇄 직전과 비교해 지난해 매출은 80% 가량 줄었다. 5년간 누적 적자만 30억원 이상이다. 결국 개성공장을 살리려 국내에서 운영하던 회사를 접었다. 신용등급은 크게 떨어졌다. 은행에서 대출을 거부하고 있다. 대표 C씨는 "개성공단이 열릴 수 있다는 희망고문이 없었다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생존방안을 선택했을 것"이라며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N사 사정도 마찬가지다. 바이어가 대부분 떠났다. 공단폐쇄 이후 회사는 1년에 8억~10억원 가량의 영업 손실이 이어졌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출범 후 남북화해 분위기에 희망을 가졌다. 직원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원청 비위를 맞춰가며 손실을 감내했다. 결국 2020년 돼서야 직원을 구조조정 했다. 막대한 적자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한 의류업체 대표는 베트남 투자 실패로 연락이 끊겼다. 또다른 업체 대표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A사 대표 Y씨는 지난해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해 생을 마감하려 했다. 다행히 부인이 발견해 생명을 건졌다. 개성기업들에 따르면 A사는 공단 문이 닫히면서 기존 거래업체 수금이 끊겨 자금이 막혔다. 거래처 빚 독촉에 시달렸다.

◆두번째 사형선고 내린 헌재 =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개성기업 30% 이상이 휴업했거나 사실상 폐업 상태다. 기업들은 정부의 공단폐쇄 조치로 피해을 입은 만큼 실질적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개성공단 폐쇄 6년이 되는 10일 청와대 앞에서 생존권 대책을 촉구했다.

협회는 "6년 동안 인내로 버텨온 억울한 개성기업들이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살려달라고"고 호소했다.

이재철 회장은 "개성기업들은 강제 폐쇄에 따른 정당한 보상과 '평화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재개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며 "하지만 문을 닫은 박근혜정부나 이후 문재인정부 모두 피해복구는 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기업들은 특히 헌법재판소 결정을 성토했다. 헌법재판소는 1월 27일 '공단을 폐쇄한 정부 조처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판단했다. 입주업체들이 2016년 제출한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6년이 지나서야 기각결정한 것이다.

이 회장은 "헌법재판소 결정은 개성공단 기업들에 내린 두번째 사형선고"라며 "남과 북의 합의조차 무시하고 정치적 판단만으로 얼마든지 남북경협을 중단할 수 있다면 어떤 기업이 남북경협에 동참하겠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희건 경기개성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소상공인 피해보상특별법을 보며 부러움과 동시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면서 "피해보상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남북경협을 신뢰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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