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중독이 학폭으로' 경찰, 청소년 도박 근절 나선다

2022-04-07 11:29:35 게재

잃은 돈 찾으려 불법대출에 학폭까지 … 중고생 6만여명 '위험집단' 추정

#고등학생 A군은 공짜로 받은 게임머니로 재미삼아 온라인도박을 시작했다가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처음엔 친구들에게 소액으로 돈을 빌리는 식으로 판돈을 충당했지만 이후에는 부모님 돈에 손대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각종 집안 물건을 빼돌려 담보로 잡히고 친구에게 '대출'까지 받아 도박에 사용하다 빚이 수천만원까지 불어나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B군은 후배들을 자신이 즐기던 도박에 끌어들여 강제로 판돈을 걸게 했다. 선배의 강요에 못 이겨 돈을 건 후배들은 원하지 않는 빚을 지게 됐고, 이후 B군은 빚독촉을 하거나 이자 먼저 갚으라는 식으로 후배들을 괴롭혔다. 위협에 시달리던 후배들의 신고로 B군은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청소년들의 도박 중독이 학교폭력, 극단적 선택 등 각종 사회 문제로 이어지는 일이 잦아지자 경찰이 청소년 도박 중독에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

6일 서울경찰청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청소년 도박범죄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청소년 도박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범죄를 막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청소년 도박 중독은 학교폭력은 물론 사이버범죄 등 각종 범죄로 이어진다. 도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학교 친구들이나 후배들을 위협해 금품을 갈취하고 이들의 아이디를 도용하는 사이버 범죄를 벌이는가 하면, 친구들의 개인정보를 다수 판매해 금전적 이득을 얻은 후 이를 다시 도박에 쓰는 식이다. 일부 온라인도박사이트들은 도박자금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을 끌어들여 또래 청소년들에게 자기 사이트를 홍보하면 일정액의 게임머니를 제공하는 등 모집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도박자금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을 노리고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 아르바이트 등을 알선하는 글이 인터넷 상에 버젓이 올라오는 상황이다.

청소년 도박 중독의 심각성은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2020년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1만5349명 중 2.4%가 도박문제 위험집단으로 집계됐다. 이를 우리나라 전체 중고등학교 재학생들로 환산할 경우 약 6만여명 이상이 위험집단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이번 협약에 따라 학교전담경찰관 활동 중 도박에서 비롯한 학교폭력을 행사하거나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을 적발할 경우 센터와 연계해 전문 상담 및 중독 치료를 받게 할 방침이다. 또 학생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도박예방 교육자료를 공동 제작하고 공동으로 예방 활동도 벌일 계획이다. 그 외에도 신종 도박범죄 사례를 공유하고 학교전담경찰관 대상으로 도박문제에 대한 전문교육을 지원하는 등 전문성 강화도 추진한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청소년 도박은 학교폭력 등 2차 범죄의 주요 원인이자 성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라며 "유관기관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입체적·종합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학생들이 도박 행위를 '또래 문화'로 여기며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도박중독에 대한 조기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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