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 칼럼

고효율 국가 스위스

2022-05-18 11:48:34 게재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과

스위스와 우리나라를 비교해보면 참으로 재미난 사실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둘 다 산으로 가득찬 국토를 가지고 있다. 또 국토가 작다. 스위스의 땅덩어리는 4만㎢ 정도로 면적으로 따지면 세계에서 132번째 국가다. 우리나라도 남한만 따지면 10만㎢로 107번째다.

스위스의 인구는 2022년 현재 877만명이다. 우리나라의 인구가 5200만명쯤 되니 우리의 1/6이 채 되지 않는다. 우리가 땅덩어리도 크고 인구도 훨씬 많으니 우리의 경제규모가 훨씬 더 큰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국민 1인당으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스위스의 1인당 명목 GDP는 9만6000달러나 된다. 3만5000달러 쯤 되는 우리나라의 두배를 훌쩍 넘는다.

왜 하필 스위스와 굳이 비교하려고 하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를 낮게 평가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스위스가 이상할 정도로 신기한 나라라는 점을 밝히고 싶었을 뿐이다.

스위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름이 나지 않는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고, 특별한 천연자원이 많은 것도 아니다. 물과 나무만 많을 뿐이다. 겉으로 보면 영농국가이지만 사실은 우리와 같이 공업국가다. 결국 스위스도 우리처럼 사람이 자원인 나라다.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민족을 꼽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다. 그렇다면 스위스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일까?

인재가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상을 합쳐 보통 노벨 과학상이라 통칭한다.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스위스 과학자는 총 20명이다. 인구 100만명당 2.35명에 해당한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는 우리나라와는 일단 수치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다.

노벨 과학상을 제일 많이 받은 나라는 미국으로 총 250명이나 된다. 그런데 미국의 인구가 3억3000만명이니, 인구당 0.75명으로 스위스의 1/3밖에 안된다.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수는 23명으로 꽤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인구당으로 따지면 100만명당 0.18명에 불과하다. 아마 인구 100만명당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2명을 넘는 나라는 지구상에 오로지 스위스뿐일 것이다. 확실한 원탑이고 확실히 별종 국가다.

한 국가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업군이 필요하다. 정치인들과 공무원들만으로 국가가 움직일 리 만무하다.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의사 판검사도 있어야 하지만 나라를 지키는 군인도 필요하고, 사회 근간을 이루는 서비스업 종사자들과 공장의 노동자들, 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육자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직업이 필요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의사나 판검사가 되길 원하고, 또 편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길 원한다. 직종별로 쏠림현상이 크다 보니 직업도 시장에 의해 지배된다. 우리처럼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집중된 경우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인구 자체가 작은 스위스에서 불가능한 방식이다. 따라서 스위스에서는 직업의 귀천을 최소화하기 위한 체계가 잘 발달되어 왔고, 이로부터 여러 직업군에 인재들이 골고루 잘 분배되고 있다. 물론 스위스에서도 특정 직군에 일손이 모자랄 때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지만 그 숫자와 체류기간을 매우 철저히 관리한다고 알려졌다.

현재 스위스의 청년·장년층 연령별 인구는 30만명 정도다. 지금 우리나라의 출산 통계를 보면 출생이 연 30만명 정도로 스위스의 연령별 인구와 비슷한 수치가 되었다. 이는 우리도 빨리 직업의 쏠림현상을 해소시켜야 함을 의미한다. 어떤 직업은 모든 청년들이 다 하고 싶어 하고, 다른 어떤 직업은 아무도 하기 싫어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야만 돌아가는 사회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스위스 학생들의 대학진학율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대학진학율이 70%가 넘는 우리나라와 수치로만 비교하면 공부 안하는 나라다. 그렇지만 인적자원경쟁력이란 잣대로 조사해보면 스위스의 경쟁력은 부동의 세계 1위이고, 우리나라는 세계 30위권에 속한다. 대학에는 많이 진학하지만 경쟁력 있는 인재를 배출해내는 비율은 매우 적다는 얘기다. 원인은 간단하다. 전국의 학생들을 모두 모아 줄을 세운 뒤 맨 앞줄에 선 학생들만 골라 쓰고, 나머지 청년들은 모두 팽개쳐 버리는 우리의 비효율적 교육구조가 그 원인이다.

효율적인 인적배분이 시급한 이유

급격히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청년 하나하나가 모두 국가 운영에 꼭 필요한 인재임을 이제는 인식해야 한다. 의사나 판검사에만 우수한 인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훌륭한 인재들이 모든 분야로 또 서울만이 아닌 지역 곳곳으로 흩어질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시급히 바꿔야 한다.

스위스가 적은 인구로 국가를 운영하면서도 전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인적자원을 가진 것은 결국 한정된 인재를 효율적으로 잘 배분해 왔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한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