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자 줄이는 생존교육 | 인터뷰-안용규 한국체대 총장

"생존수영 교육해도 사고시 90% 사망"

2022-05-25 10:50:30 게재

전문성 없고 이론교육 한계, 교육부-시도교육청 '따로' … '생존교육 국가자격증제' 대안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이후에도 매년 620여명이 강과 바다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9년 동안 익사(溺死)자는 5600여명에 달한다. 한국이 해양문화 후진국으로 불리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는 '생존수영'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설계했다. 지금까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투입된 예산만 2000억원 규모다. 매년 100만명 이상 학생들이 생존수영을 배운다. 그러나 대부분 스스로 물에 뜨지 못한다. 대한수중협회에 따르면 '생존수영을 배운 학생 90%가 사고를 당할 경우 사망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왜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을까. 해양교육 전문 강사들은 생존수영 교육에 대한 충분한 연구나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5월 20일 안용규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인터뷰를 통해 대안으로 제시된 '국가 차원의 생존교육 자격증제도' 등을 짚어본다.

안용규 한국체육대학총장은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평화올림픽 홍보단장, 대한체육회 이사, 전 MBC 스포츠해설위원, 전 한국체육철학회 회장, 전 대한체육회 전국종합체육대회위원회 위원장, 전 제32회 일본 하계올림픽대회 대한민국 선수단 부단장, 고려대학교 철학박사. 사진 전호성 기자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일, 이제 완전한 '국가책임제로' 가야 한다. 매년 국민 600명 이상이 익사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안전 후진국이라는 증거다."

안용규 한국체육대학교 총장이 20일 말했다. 안 총장은 기존 생존수영 교육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수영장에서 진행하는 영법 중심의 생존수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 나면 뒷북치는 정책은 이제 접어야 한다. 제대로 된 생존교육 매뉴얼도, 전문 자격제도도 없다보니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도교육청은 10년 동안 수영장 탓만 하더니 조립식 수영장이 대안으로 떠오르자 매뉴얼 탓으로 돌리고 있다."

안 총장은 "교사들이 아이들한테 생존교육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 여부와 실천교육 과정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생존수영'이 아니고 '생존교육'인가 = "생존교육은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스스로 물에 떠있는 시간을 늘리는 수영법이다. 바다에서는 조류나 파도에도 견뎌야 한다. 자유형 평영 배영 접영 등 수영장에서 배우는 '영법 수영'이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헤엄치는 게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전남 신안군 초등학생들이 바다에서 누워뜨기, 엎드려 뜨기 테스트를 통과해 생존교육 수료증을 받았다. 사진 전호성 기자


안 총장은 "생존교육은 수상사고를 당했을 때 단시간에 물에서 빨리 뜨고 오래 버티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수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생존이라는 개념보다 스포츠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생존교육은 해양 선진국들처럼 '교육훈련' 중심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생존수영은 교육생들에게 구명조끼부터 입히고 시작한다. 구명조끼가 몸을 띄워주니 스스로 물에 뜨는 훈련이 안된다. 교육 내용도 시도교육청마다 천차만별이다."

교사가 직접 가르칠 수 없으니 강사에게 맡기는데 이 과정에서 '안전사고 책임' 소재가 따라붙는다. 강사는 학교 눈치를 보고, 학교는 교육청과 교육부 눈치를 본다. 학부모들의 극성도 한몫한다.

"세월호 사고로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수영을 못해서 목숨을 잃었나? 사고 지역은 맹골수도다. 영법수영을 배웠다고 이곳에서 살아나올 수 있을까? 문제는 얼마나 빨리 구조할 수 있는지다."

사고자는 바다에 오래 떠있을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다. 강이나 바다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영법수영이 아니라, 빨리 물에 떠서 구조를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한수중협회에 따르면 기존 생존수영 교육을 받은 학생이 사고를 당하면 90% 이상이 '사망' 진단을 받은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수영 전문가들이 "영법 수영보다 생명과 직결되는 생존교육 훈련이 먼저"라고 말하는 이유다.

과자봉지를 안고 누워뜨기 훈련중인 대구 초등학생들. 사진 전호성 기자


◆생존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 "지금처럼 방과후나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해양 선진국들처럼 정규 교육과정에 담아야 한다. 우선 교사들이 생존교육 국가자격을 이수하고 학생들에게 이론과 실기를 가르쳐야 한다. 수영장이 아니라 강과 호수, 바다의 환경을 그대로 설치한 생존교육장이 필요하다."

안 총장은 "구명조끼 없이 스스로 물에 뜨고, 구조자가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며 "물에 떠있어도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 무리하게 발차기를 하거나 팔을 움직이지 말고 가슴 쪽에 모아주도록 가르치는 게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잠수성 저체온증'은 신체조직의 세포 활동과 심장박동이 줄어들게 한다. 뇌에 산소 공급이 안돼 의식을 잃었을 경우 4분 안에 응급조치를 해야 살아날 수 있다.

생존교육의 핵심은 스스로 체온을 유지하며 구조를 기다리는 과정이다. 페트병이나 옷 신발 과자봉지 은박돗자리 등 부력이 높은 물건을 활용해 생명을 구하는 훈련도 창의력을 요하는 교육과정이다. 이런 내용을 담아 '국가생존교육훈련센터'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국가생존교육훈련센터는 사고지역 현장과 비슷한 시설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한 요소다.

◆'생존교육 국가자격증제도' 강조 = "정부는 2017년 초등학생 생존수영 교육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를 선정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생존교육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정부 부처는 사고가 터지면 윗선 눈치를 보며 급하게 제도를 만들어낸다. 구체적인 설계도가 없으니 포장만 잘한 흉내내기에 급급하다. 이걸 바꾸는 게 혁신이고 새정부가 해야 할 책무다. 질병관리본부도 익사 연령대 중 12세 이하 아동 사망자가 24.8%에 이른다며 국가 차원의 생존교육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생존수영 지도자의 전문성 부족 △교육과정 이해 부족 △지도 매뉴얼 부재 △안전사고에 대한 부담이 생존교육 부실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존교육 국가자격증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게 수영 전문가들 지적이다.

◆한국체대 '국가 생존교육센터' 운영 = "정부가 '생존교육 국가자격증제'를 정비하면 한국체대는 국가 생존수영 지도자 교육 연수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한다. '국가 생존교육 컨트롤타워'가 되는 셈이다. 한국체대는 전문성을 갖춘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체대에는 전문 수영 교수진, 수영선수와 스쿠버, 서핑 등 수중과 수상활동 전문가들이 풍부하다. 50m 수영장과 2m 깊이의 풀도 갖추고 있다. 전국 초중고 교사들이 생존교육 국가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제반 시설과 여건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생존교육훈련에 필요한 조류나 파도, 기후변환 장치 등을 설치한다면 국가 단위의 생존교육 컨트롤타워 기능이 완성되는 셈이다.

한국체대의 기존 수영선수 양성과 수상활동 교육체계에 생존수영 교육과정을 첨가할 경우 교육효과는 커질 것이다. 교육장에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설치해 실시간으로 전국에 전송할 수 있다.

안 총장은 "국민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는 생존수영 문화는 교육으로만 바꿀 수 있다"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실행력 높은 국가단위 생존교육 컨트롤타워를 시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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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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