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금융소비자보호 틀' 다시 짠다

2022-06-02 11:07:56 게재

지난해 금소법 시행됐지만

금융환경 변화 반영 못해

금융회사 내부통제 내실화

분쟁조정 독립성 강화

금융당국이 금융분쟁조정의 독립성과 신속성을 높이는 방안을 비롯해 금융소비자보호와 관련된 전반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난해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됐고 소비자 신뢰회복을 위한 제도개선이 지속적으로 추진됐지만, 소비자중심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모펀드 피해자들, 분쟁조정 촉구 |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피해자들은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 앞에서 분쟁조정위원회의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에 대한 계약취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제공


금융위원회는 '소비자중심적 금융소비자보호제도 구축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2일 밝혔다. 금융위는 "정부가 DLF·라임사태 등을 계기로 소비자 신뢰회복을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했고 지난해 금소법이 시행됐지만 금소법은 금융환경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제도 개선은 고위험상품 중에서 사모펀드 위주로 한정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금소법은 지난 2011년 처음 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가 길어지면서 10년이 지난 2020년 법안이 통과됐다. 이 때문에 금소법은 빠른 속도로 달라진 금융의 디지털화 등 환경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금융위는 또 "금소법은 금융상품 판매절차 위주의 영업행위 규제에 중점을 두고 있어 적극적·능동적 소비자보호정책을 포섭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EU(유럽연합)와 영국 등 해외 금융당국은 지속적으로 소비자보호정책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있다. 2007년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기 전 상품 판매 시점에 좀 더 강력하게 개입하는 사전적인 감독을 통한 예방에 집중했다. 원칙중심 규제에서 좀 더 세부적인 규칙을 마련하는 체계로 전환했다. 또 지난해에는 금융회사 사고방식의 근본적 개선을 위한 '새로운 소비자 의무'를 도입했다. 금융회사가 지속적으로 고객의 이익을 사업의 중심에 두도록 한 것이다. EU도 2014년 '소매형 간접투자 상품규제법'을 발표하고 2018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금융위는 "최근의 국내외 금융환경 변화를 반영해 실질적인 금융소비자 보호 및 소비자 후생 제고를 위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소비자보호제도 개선 방향은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빅테크 회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적극적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세부과제로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통제장치 △비대면 온라인 환경에서의 금융소비자보호 △빅테크·대형GA 등에 대한 소비자보호 책임 강화 등이 포함됐다.

금융회사의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시스템 감독 장치를 내실화하고, 소비자·주주 등에 의한 금융회사 외부통제의 실효성 확보 방안 등도 논의될 예정이다. 단체소송과 집단소송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금융분쟁조정제도의 독립성과 신속성 제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영국 금융당국이 소비자보호에 활용하고 있는 행동경제학도 정책에 반영할 예정이다. 기존 소비자보호 관점에서 보면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의 원인은 주로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었다. 금융소비자의 합리적 판단을 보장하는 정보의 충분한 공급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는 절차규제와 공시 강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들은 수많은 정보들로 인해 더욱 혼란에 빠지고, 잘못된 선택으로 부적합하고 불필요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영국은 소비자보호, 시장경쟁 강화 등을 위해 소비자의 행동특성과 금융상품, 금융회사의 영업전략이 소비자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고, 행동경제학의 통찰력을 정책 수립과 금융회사·상품 분석 등 감독·검사 과정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금상품을 비교해 가입할 경우 소비자들한테 이익이지만 소비자의 80%는 기존 연금상품 제공 금융회사를 선택하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에서는 금융소비자에게 연금상품별 비교자료를 제공한 결과 연금상품 교체매매 비율이 최대 27%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소비자보호를 위한 하드웨어는 갖춰졌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전반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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