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한 일터는 요원한가

2022-06-15 10:43:10 게재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에 대해 징역 1년 이상의 강력한 처벌을 근간으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법)이 시행된 지도 6개월이 지났다. 과도한 처벌이라는 주장과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법이 발효되었지만 사업장에서 사망사고는 아직 크게 줄지 않은 것 같다.

중대법이 우리 법체계에 맞지 않는 법이므로 법 자체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법 제정 이후 사업주들이 비로소 안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긍정적인 면으로 보인다.

중대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가 흔히 호소하는 어려움은 다음 세 가지다. 들어보면 일견 일리가 있는 말 같지만 그러한 생각이 한국의 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많은 핵심 원인이다.

첫째 '안전은 너무 전문 기술적인 것인데 경영책임자가 그것까지 알아야 하나?'이다.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는 생산 증가가 경영이었다. 많은 생산량으로 수익을 얻는 경제구조였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품질이 경영이 됐다. 많이 생산하더라도 품질이 나쁘면 수익을 올릴 수가 없었다.

필자가 만나본 모든 경영책임자들은 생산과 품질에 대해서는 전문가였다. 생산과 품질도 기술인데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안전은 기술적이어서 모른다고 한다.

경영주가 내용과 방법까지 알면 좋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생산과 품질에 보이는 수준으로 안전에 관심을 두면 충분하다. 그것이 안전을 중시하는 선진 경영의 첫걸음이다.

사업장 사망사고 아직 크게 안 줄어

둘째 '보고를 받았더라면 벌써 고쳤을 것'이다. 사고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사고 난 결과를 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많다. 미리 조금만 개선했거나 방식을 바꿨으면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미리 알았으면 제대로 고쳤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안전 담당 직원이 시설이나 작업 방식 개선 또는 납품에 필요한 사항을 요구하더라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사 수용했다 하더라도 구매는 안전 이외의 부서에서 이뤄지므로 구매의 속성상 품질보다는 가격에 중심을 둔다.

안전부서의 요구를 구매부서에서 통제하는 구조에서는 적절한 품질의 안전이 이뤄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포괄하는 경영책임자의 관심이 중요하다.

셋째 '근로자의 안전불감증이 문제'이다. 많은 사고는 좀 더 집중했으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아주 특수한 사례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없다. 사람에 따라 편차도 심하다. 집중을 잘 하는 근로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근로자가 더 많다.

집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고가 날 것이라면 안전한 환경이 아니다. 집중하지 않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을 작업환경을 갖춘 나라가 선진국이다. 인간의 집중력에 매달려 사고를 예방하려 하는 우리의 안전문화가 유럽연합 국가에 비해 세배의 사망률을 유발한 핵심원인이다.

안전은 경영책임자의 핵심 가치

안전은 경영책임자가 몰라야 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핵심 가치이고, 적절한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며, 불완전한 인간이 실수를 하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오늘날 선진국인 한국 경영자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