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독점규제 세계적 추세, 한국만 역행

2022-06-22 11:28:06 게재

미국·EU에서는 관련법 줄줄이 통과

새정부는 온라인플랫폼법 입법 포기

중소기업·자영업자·소비자 피해 우려

윤석열 정부가 '자율규제'에 초점을 맞춘 온라인 플랫폼 정책 방향을 밝힌 가운데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과 EU 등 주요 선진국들이 플랫폼 독점규제를 서두르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만 자율규제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대형 플랫폼 업체의 시장 장악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정부 경제정책 규탄│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전면 수정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플랫폼 독점 자율규제를 공식화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플랫폼 독점 방지를 위한 입법 규제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에서 당정이 도출한 플랫폼 규제 합의안을 중심으로 조속한 입법 논의를 촉구했다. 새 정부의 자율규제 정책 기조로 입법동력이 상실된 데 따른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입법 서두르는 미국·EU = 22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민주당 설훈·진선미·송갑석·이동주 의원과 배진교 정의당 의원, 민형배 무소속 의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플랫폼 공정화를 위한 전국 네트워크와 함께 전날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플랫폼 독점 규제를 위한 미국·EU(유럽연합) 입법 쟁점'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자로 나선 서치원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미국은 강한 플랫폼 규제를 예정하고 있고, EU도 규제를 하되 재량 여지를 부여하면서 플랫폼 사업자와 협조 체계를 구축하려고 한다"며 "자율규제론이 플랫폼업의 특성에 비춰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EU는 플랫폼 기업들에 △기업결합 신고 의무 △차별취급 및 자사우대 금지 △이해충돌 금지 △데이터 이동 및 상호운용성 등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 입법을 완료했거나 추진 중이다.

◆미국선 관련법 하원 통과 = 미국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독점 행위를 직접 규제하는 법안 4건이 하원을 통과했다. 4건의 법안은 플랫폼 독점 종식법을 비롯해 '플랫폼 경쟁 및 기회법', '선택 및 혁신 온라인법', '서비스 전환 허용에 따른 호환성 및 경쟁 증진법' 등이다. 이들 법안 중 선택 및 혁신 온라인법은 지난 1월 상원 법사위까지 통과했다.

EU에서는 '플랫폼 시장의 공정성 및 투명성 강화를 위한 2019년 EU 이사회 규칙'(P2B규칙)을 이미 시행 중이다. 곧이어 '디지털 시장법'(DMA), '디지털 서비스법'(DSA) 도입에도 합의했다. P2B 규칙으로 플랫폼의 투명성 제고를 도모하고 DMA를 통해 실체적 규율을 제시하는 구조다. 이용자들의 접근권 및 선택권 보장, 자율성 침해 금지, 데이터 주권 보장 등을 규정한다.

서 변호사는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오히려 EU와 같은 정도의 기준은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자율규제론도 플랫폼 시장 참여자들이 상호의존적 관계를 바탕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를 체결할 수 있을 때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며 플랫폼 규제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자율규제, 독점폐해 키울뿐" =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자율규제를 통해 공정한 시장질서를 구축할 시간은 그동안도 충분했다"며 "그러나 어떤 변화도 보여주지 않았고 더 이상 국민들은 신뢰할 수 없다. 이제는 법과 제도로서 보완할 차례"라고 주장했다.

무소속 민형배 의원은 "세계적으로 보면 공정한 거래질서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우리는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정부의 원칙 없는 자율규제 기조는 플랫폼 기업의 관행적인 독점과 갑질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라며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의 조속한 제정을 통해 플랫폼 기업의 독점과 갑질, 불공정거래 관행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좌초 직전 온라인플랫폼법 =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 당정은 공정위·정무위와 방통위·과방위의 규제 주도권 갈등 끝에 온라인 플랫폼(온플) 공정화법 제정안과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안(공정위 소관), 온플 이용자보호법 제정안(방통위 소관) 등 3개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정치권이 대선에 집중하면서 해당 법안들에 대한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5월 출범한 윤석열정부가 플랫폼 자율규제 원칙을 세우면서 지난 당정 합의안의 입법동력이 상실됐다.

온라인플랫폼법이 장기표류하면 플랫폼대기업의 독점 횡포를 방치하게 되고, 중소기업과 소비자 피해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 2021년 중소기업중앙회의 소상공인 실태조사를 보면 대형플랫폼업체로부터 불공정 피해를 입었다는 중소기업 비중이 47.1%였다. 또 중기중앙회가 500개 배달앱 입점업체를 조사한 결과, 입점업체와 배달앱 간 계약서 등 서면에 의한 기준이 있다는 응답은 34.2%에 불과했다. 배달앱 입점업체 3곳 중 2곳이 주먹구구식으로 거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대형플랫폼업체의 독점 폐해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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