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압박에 홍장표(한국개발연구원장) "법치훼손" 임기 또 논란
한덕수 "소주성 설계자가 KDI 원장, 바뀌어야지"
홍장표 "국책연구기관장 임기 법률로 정해진 것"
공공기관장 임기, 대통령과 맞춰 소모적 갈등 피해야
문재인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했던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KDI)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여권의 사퇴 압박을 더 버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홍 원장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KDI 원장에 대한 거취 표명 발언은 법치주의의 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법률로 임기를 보장한 공공기관장의 정권교체기 거취에 대한 공론화와 법률적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 통해서도 압박" = 7일 KDI에 따르면 홍 원장은 전날 발표한 '총리 말씀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사이에 다름은 인정될 수 없다면서 저의 거취에 대해 말씀하신 것에 크게 실망했다"며 "이런 발언은 연구의 중립성과 법 취지를 훼손시키는 부적절한 말씀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감사원 등 권력기관을 통한 부적절한 압박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홍 원장은 "총리께서 저의 거취에 관해 언급하실 무렵 감사원이 KDI에 통보한 이례적인 조치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감사원은 KDI에 내부 규정이나 예산, 연구사업 등에 대한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홍 원장은 이를 자신의 사퇴 압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KDI가 연구기관이란 점도 강조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고 원장이 바뀐다고 해서 KDI와 국책연구기관들의 연구 보고서가 달라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연구기관의 자율성은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총리께서 KDI와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연구에만 몰두하고 정권의 나팔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국민의 동의를 구해 법을 바꾸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 발언 적절성 논란 = 홍 원장은 문재인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이자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문재인정부 핵심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을 설계한 학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와 여권으로부터 여러 차례 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한 총리는 지난달 28일 기자단 간담회에서 홍 원장의 거취를 두고 "소득주도 성장 설계자가 KDI 원장으로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사실상 사퇴를 압박했다. 한 총리는 "바뀌어야지. 윤석열 정부랑 너무 안 맞는다"고도 했다.
홍 원장의 사퇴가 문재인정부 당시 취임한 공공기관장 사퇴의 신호탄이 될지도 관심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 임기 말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가 기관장급 13명과 (비)상임이사 및 감사 등 총 59명에 이른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황덕순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의 경우 현재 한국노동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문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이태수 가톨릭꽃동네대학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을 지낸 강현구 국토연구원장,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청와대 중소벤처비서관 출신 주현 산업연구원장 등도 거론된다.
◆정권교체기마다 되풀이할건가 = 문제는 이런 논란이 역대 정권마다 반복,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관행을 끊기 위해서는 기관장 임기를 조정하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법률로서는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이 '버티기'에 나서면 뾰족한 방안이 없다. 문재인정부 초대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산하 기관장들에게 사퇴 압력을 가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된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현재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공기관장의 퇴진을 강제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켜 논란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대규(법무법인 티와이로이어스) 변호사는 "현행 법률은 정부업무를 위탁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방법으로 정책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맞추도록 법제화하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공공기관장 임기를 '3+2년' 또는 '2.5년+2.5년' 등으로 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공공기관장 임기를 2.5년으로 하고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대통령 임기 5년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완전히 일치시키고, 차기 정권이 들어서면 새 정부 공공기관장을 일괄 임명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