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행령 지방시대위원회' 구상 폐기

2022-08-31 10:36:52 게재

위법성 논란·시도지사 반발 못넘어

지자체 이견에 통합법 제정도 삐걱

윤석열정부 지방정책 컨트롤타워인 지방시대위원회 출범이 연말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9월 시행령으로 우선 설치하려던 계획은 위법성 문제와 지자체 반발 때문에 폐기됐다. 당분간은 기존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해 관련 정책을 추진해갈 예정이지만 실무조직인 기획단이 8월 말로 사실상 해체돼 혼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31일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9월 설치하려던 지방시대위원회 출범 계획을 폐기했다. 가장 큰 이유는 위법성이다. 특별법에 근거해 설치된 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가 존치된 상황에서 기능이 중복되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건 위법 소지가 있다.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7조 '중복 위원회 설치 제한' 조항에 위배된다.

뿐만 아니라 시행령에 근거해 설치한 지방시대위원회 기획단이 특별법에 근거한 균형위원회·자치분권위원회 기획단 기능을 통합해 수행하는 것 역시 위법한 일이다. 지자체들도 시행령 위원회 설치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방시대위원회를 시행령으로 우선 설치하는 방안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기존 2개 특별법을 통합한 지방시대위원회 설치법을 제정한 뒤 이에 근거해 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합 법안 제정도 가시밭길이다.

행안부는 당초 29일 예정돼 있던 통합 법안 입법예고를 지자체 의견수렴을 이유로 연기했다. 지자체들이 위원회 규모와 기능 등 법안 내용이 인수위 당시 지역균형발전특위 구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설계됐다고 반발하고 있어서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 이철우 경북지사가 26일 대구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윤 대통령이 행안부에 시도지사협의회 의견을 수렴하라고 지시했다. 30일 오전 안승대 행안부 자치분권정책관이 이 지사를 찾아가 행안부가 마련한 법안을 설명하고 시도지사협의회 의견을 들은 것도 이 때문이다. 31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경북 경주 출장 중 이 지사를 만나 의견을 직접 듣기로 했다.

행안부 결국 시도지사협의회 의견을 받아들여 위원회 규모를 손볼 계획이다. 당초 정부는 지방시대위원회를 당연직 위원(6개 부처 장관)을 포함해 20명 규모의 '작은 위원회'로 설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철우 경북지사는 현재 균형위원회 당연직 위원(14명)에 더해 국무조정실과 고용노동부까지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통령실 경제·사회·정무수석의 참여도 건의했다. 사실상 전 부처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안에 담길 위원회 규모는 이번주 말쯤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정부는 지방시대위원회 설치가 차질을 빚자 기존 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해 관련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사열 현 위원장이 30일 사퇴서를 내자 이를 수리하고 곧바로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우 위원장 내정자는 이미 기획단을 통해 사전 업무보고를 받았고, 다음달 1일부터 위원장 업무를 시작한다. 이후 이정현 전 의원을 비롯한 위촉 위원들을 추가로 임명한 뒤 사실상 지방시대위원회에 준하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난관에 부딪쳤다. 정부는 시행령 지방시대위원회 설치를 전제로 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 기획단을 사실상 해체했다. 8월 말로 기획단 직원 대부분을 면직 처리했고, 부처·지자체 파견 인력도 대부분 복귀시켰다. 하지만 기존 균형발전위원회가 최소 3~4개월은 업무를 지속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당장 인력보강을 해야 할 상황이다.

균형위원회 관계자는 "31일자로 면직되는 기획단 직원 중 일부의 임기를 연말까지 연장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오늘 중 구체적인 방침이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일 최세호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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