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임대 ·임차인, 100억 전세대출 사기

2023-01-04 11:09:12 게재

저신용자 이용, 허위 서류 작성

청년 상대 "수수료 지급" 범행

저신용자를 부추겨 100억원대 전세자금 대출사기를 벌인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급전이 필요한 청년을 대상으로 한 대출사기 사건도 이어져 당국은 주의를 당부했다.

4일 서울 양천경찰서는 저신용자를 이용해 거짓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받도록 한 혐의로 조직범죄 총책 A씨와 일당 등 63명을 적발해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일당은 돈이 필요한 저신용자를 임대·임차인 것처럼 가짜로 내세워 약 100억원의 시중 은행 전세대출 자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서 보증하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전세자금 대출이 임차인의 소득증빙 서류와 재직증명서, 전세계약서만 있으면 쉽게 대출이 된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총책 A씨가 건물을 갭투자 방식으로 매입한 후 임대인 역할을 하는 조직원에게 명의를 이전하고 가짜 임차인과 전세계약서를 거짓으로 작성해 대출받는 식이다.

일당은 계약에 필요한 임대인과 임차인을 모으는 모집책, 허위 전세 계약 체결부터 대출 실행 과정, 이자납입 등을 총괄하는 중간책, 대출 명의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대출 실행 작업을 하는 대출실장 등으로 역할을 나눠 총 45회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벌여 11월 총책과 중간책을 사기와 사문서위조·행사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이어 압수수색을 통해 대출받은 임차인 명단을 확보하고 추가로 일당을 붙잡아 지난달 27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임대인과 임차인 역할을 동시에 한 사람과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후 임대인 역할을 하는 등 적극 가담한 사람을 포함해 7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추가 범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이종철 양천서 지능팀장은 "일당은 저신용자에게 접근해 대출받게 되면 건당 4000만~5000만원을 지급하고 2년간 대출금 이자도 대납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대출 기간이 끝나면 파산신청도 해주겠다고 안심시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주소지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현장 실사만 했어도 범행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출 과정의 문제가 있다고 보고 공사와 해당 은행에 대출제도 개선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HF측은 "경찰 협조를 받아 사기 유형, 방법 등을 명확히 파악하고 보증 취급 시에 취약한 부분이 발견되는 경우 내규 정비를 하고 현장실사를 강화하겠다"며 "제출서류 진위 여부 확인 절차 마련 등을 통해 적극 대응해 나갈 예정이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8월에는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목돈이나 급전이 필요한 대출희망자를 모집해 전세자금 대출 15억원을 가로챈 B씨와 일당 4명이 울산에서 구속된 바 있다.

울산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일당은 임대차계약서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대출이 된다는 점을 악용해 연령과 주택 소유 여부에 따라 임대·임차인 역할로 나눈 뒤 허위로 서류를 작성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금을 가로챈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일당이 갭투자 방식으로 부동산을 취득한 뒤 사회 경험이 적은 20~30대를 대상으로 "학력 무관, 무직자도 대출받을 수 있다"거나 "수수료를 지급한다"며 임차인을 모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대출명의자 28명도 검찰에 송치했다.

또 광주경찰청은 지난해 9월 인터넷은행의 비대면 간편 심사를 이용해 가짜 주택 임대인과 임차인을 내세워 청년전세대출 자금 64억원을 가로챈 모집책 9명과 명의를 빌려준 68명을 적발했다. 경찰은 당시 20대 총책 C씨와 브로커 7명을 구속했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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