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심사제 도입될지 관심
대법원, 개정 입법의견 국회 제출
재판 받을 권리 논란 극복 과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태를 불러왔던 상고제도 개선 방안으로 상고심사제 도입 방안이 대법원장의 입법의견으로 국회에 제출돼 관심을 끈다. 또 대법관들의 업무를 줄이기 위해 1개 소부를 늘리기 위해 대법관 4명을 6년에 걸쳐 증원해달라는 의견도 냈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대부분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차원의 면밀한 심사와 국민여론을 청취해봐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관련 법률안 개정 절차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대법원은 5일 상고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상고심사제를 도입하고 대법관을 4명 늘리는 내용의 '상고심 관계법 개정 의견'을 대법원장의 입법 의견으로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개정의견의 핵심은 상고심사제 도입이다. 대법원은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상고심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법률심으로서 중요한 법적 쟁점을 담은 사건을 심리하는 데 집중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입법 의견에 따르면 상고 유형을 법정상고와 심사상고로 나누고 상고 사유가 인정되면 본안사건을 심사하고, 인정되지 않아 본안 심사 없이 기각 결정하면 당사자에게 소송 인지대 절반을 환급한다. 또한 민사 사건은 심사 기간을 4개월로 정했다. 이후엔 반드시 본안 심사를 하도록 정하고, 해당 기간이 지난 경우 상고기각결정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담겼다.
또한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제도를 없애자고 제안했다. 1994년 도입된 심리불속행은 특별한 사유가 없을 때 이유를 별도로 설명하지 않고 원심판결을 확정하는 제도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상고심사제가 도입되면 심리불속행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며 "심리불속행제도를 골자로 하는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을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대법관 4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내용도 입법 의견에 담았다. 대법원은 "국민적 기대를 충족하고, 상고사건을 적시에 처리하여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1개의 소부를 추가로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인 대법관 4명 증원이 가장 합리적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이다. 대법관 4명이 증원되면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 3곳이 4곳으로 늘어나게 된다. 전원합의체도 기존 13명에서 17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된다.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은 재판 업무를 맡지 않고 법원 행정만을 담당한다.
다만 대법원은 "대법관을 증원하면 생길 예산상 문제, 법 개정 당시 대통령 4인의 대법관을 일시에 임명함에 따른 정치적 논란 발생 가능성 등을 고려해 6년에 걸쳐 증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법조계·학계, 찬성·신중 = 이번 대법원의 입법의견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는 대체로 환영하면서도 신중한 분위기다.
곽준호 변호사는 "상고심이 예전에 형식적이었다면 인원까지 보충돼 3심제가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하면서도 "그러나 사람이 보충되더라도 중요한 것은 운영이니까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판사출신 오남성 변호사는 "대법관 증원은 권력분산과 심리 충실 측면에서 어쨌든 바람직하다"며 환영했다.
검사 출신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상고사건이 계속 폭주해 현재의 대법원 체제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상고제도의 개선책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면서도 "하급심 재판의 장기화 현상도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기동민 의원도 상고제 개선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면밀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 법률 개정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기 의원은 5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대법원이 지난 3년간 사법행정자문회의 및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통해 학계, 법조계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상고사건의 폭발적 증가로 대법원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상고심사제도를 도입해 대법원의 판단을 받고자 하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 의원은 또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고허가제도와 달리 심사의 요건을 법정화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면서도 "다만 상고심사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법원이 마련한 상고심사 요건이 충분한지에 대한 국회 차원의 면밀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대법관 증원에 대해서는 "국민여론을 더 청취해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후 절차 = 한편 대법원장이 입법의견을 제출하면, 법률에 따라 국회의장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입법의견을 송부하게 된다. 법사위는 입법의견을 직접 검토하거나, 소위원회에 회부해 검토하도록 할 수 있다. 입법의견에 대한 검토가 끝나면 이를 국회의장에게 보고하고, 국회의장은 그 검토결과를 대법원장에게 통보하게 된다.
만약 법사위가 검토한 결과 별다른 이견이 없으면 법사위원회안으로 입법 발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5년 법원조직법 개정의견(법원행정처장의 정무직화 및 대법관 수의 조정, 재판연구관의 다양화, 전문화 등)이 법제사법위원회안으로 제안되어 법률개정까지 이루어진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