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내진 건축물 12.9% … 저층 주거지 재앙 우려

2023-02-14 11:07:52 게재

'판 경계'보다 인구 밀집 내륙지진이 더 위험 … 영남권서만 14개 활성 단층 발견

"국민 절반 수도권,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 에서 이어짐

우리나라는 환태평양조산대나 튀르키예, 중국처럼 판과 판 경계에 있는 지역보다 지진 발생 횟수와 강도가 크게 적다. 하지만 이것이 안전하다는 의미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판 경계 지역의 경우 규모 8~9의 지진이, 내륙지역에서는 규모 7 가량의 지진이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재산과 인명 피해는 오히려 강도가 약한 내륙지진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판 경계에서 발생하는 대지진은 대부분이 인구밀집지역에서 떨어진 바다 같은 곳에서 발생한다"면서 "반면 상대적으로 강도는 낮지만 내륙지진은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인천시 강화군 서쪽 25㎞ 해역에서 규모 3.7 지진이 발생한 1월 9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정책브리핑실에서 장익상 통보관이 지진파형 등을 분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내륙지진 지역인 우리나라에 지진 발생 빈도가 증가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9일 새벽 인천 강화도 서쪽 해상에서 규모 3.7 지진이 발생했다. 올해 들어서 제주 서귀포(5일)와 전남 신안군 흑산도(7일)에 이어 3번째 지진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지진은 오전 1시 28분쯤 인천시 강화군 서쪽 25㎞ 해역에서 발생했다. 진원 깊이는 19㎞로 추정됐다. 진동은 강화군뿐 아니라 인천, 경기, 서울 등 수도권 전역에서 감지됐다. 이번 지진은 또 국내에서 디지털 지진계 관측이 시작된 1999년 이후 인천과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 중 가장 큰 규모다.

한반도와 주변 해역에서 규모 3.5 이상 지진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 10월 29일 충북 괴산군 지진(규모 4.1) 이후 70여일만이다. 한반도에서도 '규모 있는 지진'이 낯설지 않아진 상황이다. 대규모 지진은 일반적으로 큰 규모 단층을 따라 발생한다. 정확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단층구조선 조사가 필수적이다.

◆지진에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 중요 = 정부도 2016년 9월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5.1과 5.8 지진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2017년부터 한반도 단층구조선 조사를 진행 중이다. 2036년까지 4단계에 걸쳐 진행되는데 한반도 동남부 조사가 1단계였고 2단계는 2026년까지 충청·수도권, 3단계는 2036년까지 강원과 호남을 조사한다.

지난달 1월 24일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그 일환으로 '한반도 단층구조선의 조사 및 평가기술 개발' 1단계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한반도 동남부(영남권)에는 최소 14개 활성단층(제4기 단층)이 존재한다. 14개 활성단층들은 양산단층 유계분절, 반곡분절, 벽계분절, 삼남분절, 울산단층 왕산분절, 말방분절, 차일분절, 동래단층 석계분절, 울산단층 또는 동래단층에 속하는 천군분절, 장대단층 모곡분절, 곡강단층 곡강분절, 읍천단층 읍천분절, 수렴단층 수렴분절이다.

활성단층은 '현재 지진이 발생하고 있는 단층'이 아닌 '현재부터 258만년 전 사이(신생대 제4기) 한 번이라도 지진으로 지표파열이나 지표변형을 유발한 단층'을 말한다. 활성단층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간접적으로 추정되는 단층들도 존재했다. 울산단층 갈곡구간과 양산단층 평해구간 등이 이에 해당했다.

이번 조사는 부경대와 부산대, 지질자원연구원,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연구진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항공 라이다(LiDAR) 촬영 등 첨단기술을 동원해 과학적 증거를 확보한 뒤 학자들 간 합의하고 24개 중앙부처·공공기관이 참여해 검증했기 때문에 연구 결과 신뢰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연구진은 "현재 기술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제4기 단층을 규명하려고 노력했으나 개발과 도시화 등으로 지질 선형구조 분석과 직접 조사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단층 흔적이 심부에 있기도 해서 지표 흔적을 확인하는 것으로 모든 단층을 찾기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활성단층 유무에 따라 안심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한반도 전역이 지진에 안전하지 않다고 인식하며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4기 단층 주변에 대해선 단기적으로 내진성능평가와 내진보강을 우선해 추진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내진설계를 강화하고 필요한 규제를 하는 방안을 체계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내진 기준 강화에도 사각지대 많아 = 하지만 국내 지진 대책, 특히 내진설계·시공은 걱정스런 수준이다.

허 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전국 건축물 내진설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전국 건축물 732만5293동 중 내진확보가 이뤄진 건축물은 94만2194동으로 12.9%에 불과했다. 내진 대상인 614만8639동을 기준으로 해도 전체의 15.3%만이 내진 성능을 확보한 상태였다.

상대적으로 내진설계 비율이 높다는 서울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시지진포털 등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시내 건축물 59만3533동 가운데 내진 설계와 보강 공사 등을 통해 일정 기준 이상의 내진 성능을 확보한 곳은 19.5%인 11만5824동에 그쳤다. 나머지 47만7709동(80.5%)은 내진성능을 갖추지 못했다. 특히 단독주택은 6.7%만 내진성능을 갖춰 아파트 등 공동주택(45.4%)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내진설계 대상만 놓고 봐도 내진성능 확보율은 23.8%에 그쳤다. 설계 대상 48만6828동 가운데 11만5824동만 내진성능을 갖췄다.

국내에서는 1988년 내진설계가 처음 건축법에 규정됐고 적용 의무 대상이 확대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비율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내진설계 기준이 1988년 이후 총 세 차례에 걸쳐 대상이 확대되었지만 기존 건축물에 대한 소급 적용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벽돌·블럭 쌓아 올린 저층 주거지 위험 = 저층 건물들이 지진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1988년 이전에는 아예 규정이 없었고, 이후 2005년까지 5층 이하는 내진 설계 대상이 아니었다. 2017년에 2층 이상으로 강화됐지만 이마저도 신축 건물만 적용을 받는다. 이 때문에 인구 밀도가 높고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 몰려 있는 수도권에 대형 지진이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포항 지진 당시에도 피해가 집중됐던 곳은 연립주택 등 다세대 주택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주거 건물 약 36% 가량은 벽돌 또는 블록을 시멘트와 모래, 물을 섞은 접착제 모르타르를 이용해 쌓아 올리는 적조 방식으로 건축됐다. 적조건물은 지진에 취약하다.

실제 이번 튀르키예 지진에서 많은 건물들이 무너진 것도 내진 설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외신에 따르면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에는 내진 건물이 극히 드물다. 튀르키예 정부가 2004년 신축 건물에 대해 내진설계를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오래된 건물들은 사각지대로 남았다. 일각에서는 법 개정 이후에 지어진 건물들조차 실제로는 부실 공사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는 내진성능을 보강한 건축 관계자의 요청 시 기존 건축물의 건폐율, 용적률(최대 10%)을 완화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지만 실적은 미미한 상황이다.

허 의원은 "올해 들어 일본, 대만 등 환태평양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잇따른 강진이 발생하는 등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며 "국토부는 현 정책이 미미한 결과를 낳고 있는 이유에 대해 면밀히 분석해 새로운 유인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대지진 우려돼 = 한편 학계에서는 판 경계지역인 일본에서 일어나는 대지진이 한반도 강진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큰 지진이 일어나면 발생 지역에서 해소된 응력이 단층이 연결된 주변 지역 지층에 쌓여 또 다른 지진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2016년 경주, 2017년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0대의 강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지질 기상학자들은 일본 본토의 남쪽 해안인 '난카이 해구'에서 30년 안에 규모 8에서 9 사이의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70% 이상이라고 경고한다. 또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 필리핀판과 북미판이 충돌하고 있는 도쿄만 남쪽의 '사가미 해곡'에서도 30년 안에 규모 7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관련기사]
[인터뷰│송석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재해연구본부장] "예측 어려운 지진, 대비가 중요"
10년간 지진 1079회, 진도5 이상 5회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장세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