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세 마리 눈먼 쥐'와 디케의 안대

2023-04-28 11:01:19 게재
프로스포츠의 계절이다. 뜨거워진 경기장만큼 판정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오심을 줄인다며 도입한 비디오 보조 심판(VAR)은 흔한 광경이 됐다. 나름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렇지만 야구심판의 스트라이크와 볼에 대한 들쭉날쭉한 판정은 여전하다.

한때 마더구스의 동요 '세 마리 눈먼 쥐'(Three Blind Mice)가 경기장 심판을 긴장시킨 적이 있었다. '세 마리 눈먼 쥐'는 응원석이 오심한 심판에게 주는 경고이자 언더독에게 보내는 응원가였다.

사실 이 동요는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쥐덫'에 등장한다. 널리 회자되는 역사적 메타포도 있다. 영국 왕 헨리 8세가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왕비와 이혼하고 국교를 바꿨다. 딸인 메리가 여왕이 되자 국교를 다시 바꿨다. '세 마리 눈먼 쥐'는 당시 국교를 가톨릭으로 바꾸는 것을 반대했던 교회 주교들의 풍자노래였고, 무능한 사람의 상징이었다.

고의성 없는 오심도 무능이듯, 불공정한 리더는 공공의 적이다. 그래서 공정과 정의는 사법부의 역할을 요청한다. 특히 작금의 우리 정치는 소위 검수완박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과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에서 보듯이 제왕적 대통령 권력과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그렇다보니 한편에선 국가적 주요 현안에 사법부가 최종 판정하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은근한 기대도 있는 듯하다.

야권은 방송법과 노란봉투법,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임명권 제한 법률 등을 준비하고 있다. 여권은 거부권 행사 등으로 맞설 것이다. 이 모두가 사법판단의 대상이 될 소지를 안고 있다. 가히 사법 전성시대를 예고해주는 징표들이다.

이처럼 사법부의 중요성이 부상하고 있지만, 문제는 국민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한국리서치가 2020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실시한 전국 1000명 웹 조사가 그것이다. 국민은 '인간 판사'(39%)보다 'AI 판사'(48%)를 더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이 지났지만 이런 인식이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다.

무능에 의한 오심, 입맛대로 판결, 이념판결, 뒷거래 재판, 권력의 충견 등 일탈이 답습된다면 사법통치시대는커녕 AI판사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법의 공정함과 가차 없는 집행을 상징하며 왼손엔 저울을, 오른손엔 칼을 들고 눈이 안대로 가려져 있다. 어떠한 편견이나 사사로움 없는 판결을 의미한다. 높은 윤리와 도덕성이 요구되는 고난의 길이자 명예로운 길이다.

통상 3인으로 구성되는 재판부가 '세 마리 눈먼 쥐'로 전락할지, 아니면 안대로 가려진 디케의 눈이 될 것인지 요즘처럼 공정과 정의가 유난히 강조되는 때에 새삼 되묻게 한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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