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금융, 전세계 금융자산 절반 육박

2023-06-05 10:43:28 게재

486조달러 중 239조달러 차지 … 미국·유럽서 '잠재적 리스크 크다' 잇단 경고음

올해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미국 중대형 은행 3곳의 갑작스런 파산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정상화에 따른 여파였다. 은행권에 닥친 파고는 잠잠해진듯 보이지만, 또 다른 금융권이 우려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그림자금융(shadow banks) 또는 유사은행업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국부펀드와 보험사, 연기금, 헤지펀드, 금융기술기업, 금융청산소, 뮤추얼펀드, 머니마켓펀드 및 사모신용펀드 등이 있다.

스위스 소재 '금융안정위원회'(FSB)에 따르면 그림자금융은 전세계 금융자산 486조8000억달러의 절반(49.2%)에 해당하는 239조달러를 관리한다. 2008년 42%에서 늘어났다.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그림자금융에 몰린 돈은 두배 증가했다.

투자전문매체 배런스는 4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는 미국 최대은행들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규제에서 한발 벗어난 그림자금융은 수년간 초저금리 기조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그림자금융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과 그림자금융권이 어떻게 연계돼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파악도 없다. 그림자금융권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였다. 비전통적인 금융기관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복잡한 증권으로 만들어 은행과 투자자에게 판매하면서 그 피해가 금융시스템 전체로 확산된 바 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시장이 악화됐을 때 그림자금융권 자산의 약 14%가 유동성 고갈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미국 코넬대 경제학 교수인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그림자금융권의 엄청난 규모와 높은 레버리지 수준, 그리고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보고 및 규제 기준은 이 부문을 잠재적인 불씨로 만든다"고 말했다. MIT 교수로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책임자를 지낸 사이먼 존슨은 "모든 이들이 향후 문제를 일으킬 명백한 후보로 그림자금융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림자금융은 올해 초 SVB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무너뜨린 자산불일치와 그에 따른 뱅크런과 직접적인 유사점은 없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비은행업계의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이 5~7년 동안 자금을 묶어두는 펀드를 통해 수십년 동안 자산을 보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 사모신용펀드와 같은 대형업체는 은행보다 레버리지가 적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급격한 금리상승이 그림자금융권 일부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높은 금리는 신규 모기지 수요를 감소시켜 비은행 대출기관에 타격을 입힌다. 신흥시장 국채 및 하이일드 채권 일부의 유동성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또 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로 사모업체에서 자금을 조달한 일부 기업의 현금흐름이 위축되고 있다.

배런스는 "분명한 사실은 그림자금융권에서 벌어진 일이 그곳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헤지펀드 아케고스 캐피털이 우량주에 대한 집중적인 베팅으로 손실을 내면서 마진콜이 발생, 약 200억달러의 자산을 매각해야 했다. 이 펀드에 노출된 노무라와 UBS 등 대형은행들은 수십억달러 손실을 입었다.

연준에 따르면 비은행 금융중개업체에 대한 은행의 담보대출액은 2022년 말 기준 총 2조달러에 달한다. IMF 통화·자본시장개발 부국장이자 글로벌 금융안정성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파비오 마시모 나탈루치는 "리스크가 뒷문을 통해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사모신용자산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2300억달러였던 사모신용자산은 현재 1조5000억달러로 급증했다. 사모신용 제공업체는 보통 1000만~10억달러의 매출을 내면서 제도권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힘든 중견규모 기업들에게 직접 대출을 제공한다.

높은 수익률과 다각화 기회에 이끌린 투자자들은 사모신용펀드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보험사들은 지난 10년 동안 이같은 비유동성 자산에 대한 비중을 2배로 늘렸고, 연기금들은 2006년 이후 사모신용을 포함한 대체투자 비중을 2배 이상 높였다.

연준은 지난달 금융안정성보고서에서 "사모신용펀드가 금융안정성에 제기하는 위험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면서도 "차입자의 특성, 거래조건의 성격, 채무불이행 위험 등 대출 포트폴리오에 대한 투명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출기관과 은행의 연결고리를 우려한다. 무디스에서 사모펀드 연구를 총괄하는 애나 아르소프는 "월가는 서브프라임 대출자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에 대출하는 펀드에는 돈을 빌려준다"고 말했다. 무디스는 향후 12~18개월 경제가 둔화되고 기업들이 높은 차입비용 인플레이션 시장변동성과 씨름하면서 일부 사모신용업체들이 고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가장 규모가 큰 블랙스톤 사모신용펀드(BCRED)는 지난해 말 분기별 투자자 환매 한도인 5%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블랙스톤은 환매에 문제가 없었고 올해 1분기 환매 요청이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무디스의 아르소프는 "사모 투자자를 구하기 위한 업계의 노력은 잠재적으로 신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사모신용펀드의 위험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스며들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 펀드

투자자의 자금을 일정기간 동안 묶어두는 사모펀드와 달리, 대부분의 뮤추얼펀드는 투자자가 원할 때 언제든 매매할 수 있어 하루 단위로 유동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일부 회사채의 경우 한달에 한번만 거래가 이뤄지고 경기가 어려울 때 거래빈도가 낮아진다. 신용손실이 누적되거나 시장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투자자들이 유동성이 떨어진 자산을 보유한 펀드를 팔기 위해 몰려든다. 채권펀드는 보유자산을 헐값에 청산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투자자들이 현금을 찾아헤매고 일부 채권펀드가 환매를 위해 자산을 매각하면서 채권시장 유동성이 고갈된 바 있다. 결국 연준은 사상 처음으로 회사채 매입을 제안하고 시장에 개입했다.

2013년 이후 채권펀드에 순유입된 자금은 1조7400억달러에 달한다. IMF는 단일펀드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특정자산에서의 자금이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IMF에 따르면 최근 하이일드 및 신흥시장국채 등에서 시장유동성을 측정하는 지표인 매도·매수 스프레드가 2020년 봄 수준으로 확대됐다.

비은행 모기지 대출기관

모기지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비은행 대출업체가 전체 대출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로켓컴퍼니의 로켓 모기지와 UWM홀딩스의 유나이티드 홀세일 모기지가 가장 큰 대출기업이다.

비은행 대출기관은 은행만큼 많은 자본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의 주택구입이 줄어들면서 지난 2년 모기지 신규대출이 60% 감소했다. 잠재적 손실로 업체의 자본완충력이 줄어들어 레버리지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비은행 대출기관들은 보통 은행 신용대출을 통해 단기자금을 조달한다. 시장 스트레스가 발생하거나 차입업체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경우 은행들이 조기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UC버클리대 하스경영대학원 금융·부동산 교수인 낸시 월리스는 "채무불이행이 늘면 모기지 및 주택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1분기 모기지 연체율은 3.6%에 불과했다. 주택담보대출협회(MBA)가 1979년 연체율을 추적하기 시작한 이래 1분기 기준 최저치다. 하지만 향후 경제상황 악화로 연체율이 급증하면 대출자로부터 월별상환금을 징수해 은행과 패니매, 프레디맥 등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모기지업체들의 고통이 커질 수 있다.

유럽도 그림자금융 경고등

유럽에서도 그림자금융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말 유로존 최대 은행들이 자금의 15% 이상을 그림자금융에 의존하고 있다며 은행시스템이 외부의 스트레스 '파급효과'에 노출돼 있다고 경고했다. ECB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보험사와 헤지펀드, 자산관리자 및 연기금을 포함하는 그림자금융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유로존 은행들이 유동성과 신용 위험에 점점 더 취약해졌다"고 밝혔다.

ECB에 따르면 유로존 13대 은행들이 그림자금융 또는 비은행 금융중개기관(NBFI)으로부터 차입한 액수는 전체 차입액 중 약 80%를 차지한다. 80개 은행과 NBFI 간의 관계를 조사한 ECB가 파악한 가장 큰 위험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은행시스템에서 NBFI 기관의 예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ECB는 "소매 및 기업 예금에 비해 규모는 적지만, NBFI 기관의 예금은 시장상황 변화에 특히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CB에 따르면 잠재적 위험 전이의 또 다른 채널은 은행의 파생상품 거래다. 1/5정도가 그림자금융 법인과의 거래였다. 그림자금융에 대한 대출 및 기타 노출은 유로존 은행 총자산의 약 9 %를 차지한다. 그림자금융은 또 유로존 은행들이 발행한 모든 채무증권의 약 28%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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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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