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입시

드로잉,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에 대하여

2023-12-09 00:00:01 게재
‘잘 그리네!’ 어렸을 적, 그림을 좀 그려본 아이들이 들어봤을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벽걸이 달력 뒷장을 도화지보다 좋아했다. 또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고요한 일요일 새벽에 이불을 덮고, 방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던 모습이 나의 현재 정체성을 만든 출발이었다. 물론 소심한 성격에 혼자서도 노는 데(?) 지장 없는 그림 그리기라는 놀이에 매달렸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리는 것을 좋아하니 자연스레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 그림을 그리며 내향적인 성격을 강화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잘 그린다는 사람들의 칭찬은 나의 명예였고, 인생의 꿈을 미술로 밀어붙인 에너지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문득, ‘잘 그리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빠진 적 있다. 정답(正答)을 찾았다 생각하다가도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또 관점이 바뀜에 따라 답도 달라져 갔다. 관점과 시대에 따라 <잘 된 그림>도 달라지지만, 그래도 드로잉 잘 하기 위한 변하지 않는 기준 몇 가지를 말해보려 한다.

 

1. 관찰과 집중의 중요성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관찰하고, 느끼는 것을 내 손으로 표현하는 본능이라 생각한다. 물론 동물적 본능보다는 고차원적인 행위이다. 아무튼 이 행위는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다른 재료(동굴의 벽, 땅바닥, 암석, 화선지, 도화지, 도자기, 나무 등. 심지어 최근에는 모니터 화면에까지)에 옮겨 그리는 일이다.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 둘 다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 역사상 거론되는 모든 미술가들은 모두 여러 재능 중 관찰력과 호기심이 압도적으로 좋다. 관찰을 잘하고, 집중을 잘하는 것이 그림 잘 그리기의 시작이다.

 

2. 이론의 밑받침

위에서 공부와 그리기 모두 엉덩이로 한다고 말했다. 성실과 우직함이 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아주 큰 덕목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에 속도와 효율을 얻어 주는 것이 바로 이론의 무장이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사물을 옮겨 그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적 방법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사용되는 이론은 원근법(遠近法)이다. 관찰자와 사물 사이에 있는 공기층으로 인해 생기는 빛의 반사, 흡수, 굴절 등으로 거리에 따라 물체의 색이 달라 보이는 공기원근법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2차원 평면에 3차원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깊이감을 만들어 주는 투시원근법이 있다. 이 두 가지 이론이 숙지가 얼마나 되어 있느냐가 더 잘 그리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요소이다.

 

3. 인체 표현의 중요성

보통 미술을 접하게 되면 풍경에서 시작해 사물에 정착하고 인체로의 위대한 도전(?)을 하게 된다. 인체는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요소를 지녔다. 비디오 아트와 애니 등의 장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술 작품들이 인체를 멈춤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동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럴수록 명작의 반열에 들어갈 가능성도 높다. 즉, 인체 표현에서 우리는 ‘곧 도약할 듯한’,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물며 가장 고요한 상태를 표현한 국보 반가사유상의 하의처럼 ‘옷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듯한’, 심지어 묵상이나 기도를 표현한 그림에서도 ‘기도하는 이의 고뇌가 밖으로 표출되는 듯한’ 기운을 느끼지 않는가.

이처럼 인체는 가장 많이 관찰하게 되는 대상이면서 그 표현이 역량에 따라 아주 심오해질 수가 있다. 그리기 실기력을 체크하는데 인체표현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 중에서도 손이 흔하게 등장하는 익숙한 부위이다. 그 다음은 단연코 얼굴이다. 두상에서 상반신으로 또 하반신으로, 반신(半身)에서 전신(全身)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며 숙련된 실력을 요구한다. 게다가 사물을 눕히거나, 뒤집는 등 다양한 각도에서 그리는 것을 요구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는 앙각(仰各) 과 이와 반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바라보는 부감(俯瞰)을 사용한다. 갈수록 잘 그리기 힘들어지지 않는가?

 

4. 연출은 갈수록 중요해져

한 장의 정적인 이미지에서 무언가 더 담아냈을 때 나오는 그림의 형식이 있다. 여러 컷(그림)이 연결되고, 합쳐졌을 때 비로소 가치가 확장되는 것. 바로 애니메이션과 이야기만화이다. 필자는 현대에 와서 추가된 잘 그린다는 것의 또 다른 기준이 바로 정적이고 평면적인 작품들이 꿈틀대는 듯 동적이고 입체적으로 변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컷 한 컷이 다 잘 된 작품이어야 하지만 진정한 생명력을 더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호소력 있는 연출이 필요하다. 연출과 그림의 결합. 정적인 그림에 움직임을 불어넣고, 담고 있는 이야기의 양을 무한대로 늘려주는 그림이 ‘애니메이션’과 ‘이야기만화’이다.

 

드로잉은 미술의 기본이자 토대

어느 정도 만큼 잘 그리는 것 같은데, 그 이상은 뭐가 있을까? 몰두할 때 즈음이었다. 동료 선생님의 축구에 빗댄 명언을 들었다. “기초체력이 없다면 제아무리 좋은 스킬(Skill)이라도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기본 드로잉은 그림의 기초와도 같다. 기본을 망각하고, 기교를 생각하고 그 이상을 바라본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드로잉은 초보 때나 하고 이 이후로는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작품의 기초이고 시작이다. 나부터 다시금 기본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지금 해 봐도 드로잉은 계속 어렵다.

허경만 원장

일산 후곡 창조의아침 미술학원

허경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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