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남북관계 출구는 없나

2011-03-09 12:49:19 게재

지난해 화약 냄새가 진동하던 남북관계가 올해 초 대화의 문을 여는 듯하더니 또 소강상태에 빠져 들었다. 한국의 주요 언론은 블랙박스 속의 북한소식을 실황중계하듯 전하고 있다. 마치 지옥의 문이라도 연 듯하다.

이명박정부의 기다리는 전략은 북한의 두 손을 드는 변화가 아니면 붕괴되는 변화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대북정책은 일관된 정책으로 하나의 패턴을 이루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이 정책을 임기 말까지 밀고 나갈 것 같다. 결국 북한이 두 손을 들든지 붕괴되든지 하지 않으면 남북관계에는 출구가 없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쉽게 포기하는 일은 없을 테고 개혁개방을 하거나 한국 일각에서 기다리듯이 두 손을 드는 일도 없을 것 같다. 고이즈미 일본 전 총리의 평양 방문 당시의 통 큰 결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렇다면 북한의 붕괴가능성은 있나? 20년 가까이 북한의 붕괴를 점쳐왔지만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다. 한국 일각에서는 앞으로 붕괴를 기다리는 것 같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천안함사건이나 연평도포격사건을 경유하면서 정당성을 부여받고 국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한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든,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가며 붕괴시키든 남한 국민들의 반응은 담담할 것 같다. 그만큼 북한에 대한 혐오증이 커졌다.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외치던 모습은 먼 옛날의 이야기 같다. 남북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있다.

남북관계에 출구는 없는 것일까? 중국말에 퇴일보 해활천공(退一步 海闊天空)이라는 말이 있다. 한걸음 물러서면 운신의 폭이 바다와 하늘처럼 넓어진다는 뜻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 남과 북이 서로 한걸음씩 물러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 알기 시작한 북한의 변화

지난 정부 10년의 햇볕정책과 이명박정부 3년의 대북정책은 모두 북한의 변화를 목표로 하는 정책이었다. 두 정책 모두 북한 지도부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맨 땅에 머리박기였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핵 포기나 개혁개방과 같은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변화는 분명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한국을 알기 시작한 것이고 대남인식이 바뀐 것이다. 수많은 한국인이 북한을 다녀간 지난 10년의 변화가 클까, 아니면 빗장 을 닫은 지금이 클까? 결국 출구는 북한이 어떤 변화를 바라는가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한국이 바라는 북한의 변화는 너무 거창한 면이 없지 않다. 정상회담으로 북한을 한방에 변화시킨다고 보았던 것도 그렇고, 이명박정부가 내놓았던 '비핵 개방 3000'도 그렇고, 모두 실현하기 어려운 거창한 목표였다. 거창한 목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운신의 폭을 좁히는 족쇄가 됐다.

북한 역시 목표가 너무 거창하다. 1980년대 변화를 모색하던 북한은 중국 천안문사태, 동구권 몰락, 소련 해체를 보면서 개혁개방의 의지를 접었다. 점진적이고 폭 넓은 개혁개방 대신 한방에 도약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했다.

북한은 핵 개발로 세계 초대강국인 미국과 게임을 하며 통을 키워왔고 도약을 꿈꾸었다. 거기에 IT 나노 생명과학과 같은 첨단기술로 도약식 발전도 꾀했다. 먹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세계 선진국 수준을 목표로 정했다. 그러나 결국 거창한 변화도 이루지 못했고 작은 변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이제 남과 북은 거창하게 새로운 출구를 찾지 말고 작지만 실현가능한 출구를 찾아야 한다. 예컨대 북한의 시장경제요소를 살리는 작은 변화의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출구가 보일 것이다.

북한의 시장경제 요소 살려야

분명한 것은 현재 변화하는 또 다른 북한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해 방문했을 때 본 북한의 모습은 분명 몇해 전과는 달랐다.

시장이 어느 정도 활성화되고 경제가 돌아가는 모습, 도급제로 활기를 찾는 모습, 나름대로 경제를 살리려고 고심하는 모습, 시장경제요소가 급증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아직은 작고 미미한 변화이지 묵직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북한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이런 자율적 변화일 것이다.

이젠 개혁개방과 같은 큰 변화를 점치기보다는 지경학적 시각으로 작은 변화에 나래를 달아줘야 할 것이다.

진징이(金景一) 북경대 교수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