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가는 생명의 빛, 모두 함께 밝혀야│②자살은 국가적 재난

"대통령 직속 전담기구 설치 필요"

2014-04-25 12:44:57 게재

전문가들 "관련 부처간 통합조정력 중요"

열악한 예산·전문인력 확충도 중요 과제

보건복지부는 이달 1일 '2013 자살실태조사'란 이름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자살 사망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 자살시도자 대면조사, 의료자료 분석 및 의식조사 등 포괄적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자살 현황을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정부 주도 아래 체계적으로 진행된 최초의 대규모 실태조사다.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실천적 대응을 마련할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자살시도자와 유가족, 독거노인 등 자살고위험군이 전국적으로 5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 관리가 중요하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정부 주도 최초의 자살실태조사 실시 = 자살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살을 한번이라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은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자살할 위험이 2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7∼2011년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을 찾은 8848명 가운데 2012년 말 기준으로 실제 자살한 사람은 236명이다. 자살 사망자는 시도자의 2.7%다. 한해 자살시도자 10만명에 대략 700명꼴로 자살한 셈이다. 이는 전체 자살률인 인구 10만명 당 28.1명보다 약 25배 높은 것이다.


 

나이대별로는 노인층의 자살률이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60대와 70대 자살 시도자는 10대보다 자살 위험이 각각 3.6배, 3배 높았다.

또 지난해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은 자살 시도자 1359명을 대상으로 심층면담을 실시한 결과, 이들 가운데 37.9%는 자살 시도의 이유로 '우울감 등 정신과적 증상'을 꼽았다. 이어 '대인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31.2%를 차지했으며, '경제적 문제'(10.1%), '고독'(7.1%), '신체 질병'(5.7%) 등이 뒤를 이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징후는 나이대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20대 이하는 SNS에 자살 관련 문구 등을 올리고, 30∼40대는 음주가 심해지며 점차 관계 단절의 양상을 보였다. 50∼60대는 가족한테 부담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나 '어머니(혹은 아버지) 잘 모셔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리적 부검' 진행해 눈길 = 특히 이번 실태 조사에는 72건의 자살 사망 사례에 대해 유가족 심층 면담과 유서 분석 등을 통한 '심리적 부검'이 포함된 점이 눈에 띈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자살에 이르는 유형을 △급성 스트레스 유형 △만성 스트레스 유형 △적극적 자해·자살시도 표현 유형 △정신과적 문제 유형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눴다.

급성 스트레스 유형은 자살 12개월 이내에 발생한 경제·대인관계 스트레스 등 특정 사건의 영향 탓에 급성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다.

만성스트레스 유형은 질병, 폭력, 학대, 빈곤 등의 만성적 스트레스가 전 생애에 걸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특정 촉발 사건에 의해 사망에 이른 경우다.

적극적 자해·자살시도 표현 유형은 절망감 등 심리적 고통으로 인해 자살의도를 주변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자해, 자살을 여러번 시도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경우다.

정신과적 문제 유형은 하나 이상의 정신과적 문제가 존재하는 가운데 자살사건으로 이어진 경우다.

"자살문제 해결, 국가 어젠다 삼아야" = 정부 주도의 체계적인 자살실태 조사가 첫걸음을 뗀 만큼, 앞으로의 과제는 실효성 있는 자살예방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문제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자살예방 국가전략의 핵심으로 △요인 파악(위험요인 및 보호요인) △집단 특성에 맞는 효과적 개입 △집계 시스템 개선과 연구 △모니터링과 평가 등 5가지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 교육부, 안전행정부, 여성가족부, 농림축산식품부, 국방부 등 자살예방프로그램과 관련된 여러 부처를 아우를 컨트롤 타워 설립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2011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에 대한 법률에 근거해 주무 부처인 복지부 산하에 중앙자살예방센터를 설치했지만 강력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자살예방행동포럼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인한 연세대 교수는 "자살이 심각한 국가적 문제란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의 전담기구를 설치해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알리고 각 부처간 의견과 역할을 효율적으로 조율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살 문제를 국가적 어젠다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하고, 관련 부처와 전문가 및 자원을 조직화할 중심을 세워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열악한 예산과 인력의 현실화다.

송 교수는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복지부 자살예방사업 배정 예산은 보건의료 분야 예산 8조5000억원 중 48억원으로 0.1%에도 못미친다"면서 "이러다 보니 전문인력도 태부족해 중앙자살예방센터의 효과적 활동도 제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현재 연간 3000여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비교적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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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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