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반대, 수도권서 전국으로

2015-10-28 11:17:34 게재

"한중연 교수 중 극소수만 국정화 찬성" … 지방 대학 교수들 집단성명 잇달아

국책 역사연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역사전공 교수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며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또 수도권 소재 대규모 대학에서 시작된 교수사회의 집필거부 선언이 지방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한중연 교수 8명은 27일 '역사학 전공 교수들의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문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교수들은 "국정 교과서가 한국사회가 일구어 온 국제적 위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 큰 우려를 표명한다"며 "만약 국정교과서가 추진된다면 집필은 물론 제작과 관련한 어떤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국정교과서는 폭압이 난무하는 20세기 역사의 산물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고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에는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구시대적 유물"이라며 "다시 국정화하겠다는 것은 역사를 현실 정치 논리에 따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면서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하는 역사 연구자와 교사들이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이들은 "국가 권력의 역사교과서 독점이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것이며, 일제가 물러나면서 파기되었다가 유신 체제하에서 독재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면서 다시금 국정교과서 제도로 부활된 것"이라며 "국정교과서의 도입은 세계가 주목하는 발전된 한국 사회의 위상과 품격을 훼손하는 수치스런 조치"라고 지적했다.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국책기관 소속으로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국사를 공부하는 학자로서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특히 일부 한중연 교수가 국정교과서 도입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역사학 전공 교수 다수가 같은 뜻을 가진 것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이들은 소수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역사 아닌 다른 전공 교수를 포함한 연구원 전체 교수 선언도 이어질 것"이라며 "이번에는 집필거부 선언이라 전공 특성상 집필진에 포함될 수 있는 교수들만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집필 거부 선언에 참여하지 않은 두 명의 교수는 권희영, 정영순 교수로 현재 국정화 지지에 앞장서고 있다. 권 교수는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진이었으며 지난 26일 새누리당 친박의원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국정 교과서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으로 지난 16일 발표된 국정 교과서 지지 교수 102인 명단에도 포함됐다.

또한 수도권소재 대규모 대학에서 시작된 교수들의 집필거부 선언은 지방소재 대학 교수들이 가세하면서 사실상 교수사회 전체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 역사전공 교수들은 최근 성명을 내고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 시대의 과제를 함께 풀어가야 하는 지성인의 양심으로 박근혜정부의 교과서 국정화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국정 교과서의 집필과 수정·심의 작업과 이후 국정 교과서를 활용한 정책연구 및 출제 등의 제반 활동에 일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광주·전남지역 6개 대학 역사학 전공 교수 27명, 강원지역 6개 대학 31명, 경북지역 9개 대학 40명, 경인지역 9개 대학 27명, 진주지역 2개 대학 14명 등도 국정화 반대 및 집필거부 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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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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