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기숙사, 비싼 기숙사

55만명, 학교 밖서 거주지 찾아

2015-10-29 11:32:33 게재

전국 195개 대학 수용률 17.4%에 불과 … 부족한 수요에 학교측 갑질 논란도

경기도 파주시 교하지구 출신인 서 모군은 올해 이른바 '인서울 대학'에 입학했다. 가족들은 물론 서군도 기숙사 입사를 희망했지만 이른바 '하늘에서 별따기보다 힘들다'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입학 후 서 군은 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이면 광역버스 한번에 전철 두번을 갈아타야 했다. 왕복 4시간에 가까운 통학시간도 시간이지만 구내식당 식비보다 훨씬 비싼 교통비(6400원)도 부담스러웠다. 특히 학과 행사나 스터디 등이 있는 날이면 일부 구간에서 택시를 이용해도 새벽에야 집에 도착했다. 학과 사무실이나 학교주변 친구 자취방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결국 서군의 부모는 부담스럽지만 아들을 위해 학교 인근에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자취방을 구했다.

현재 대학이 설치·운영하는 기숙사는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기숙사를 구하지 못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한 원룸, 고시원 등에서 거주하고 있다. 대학가는 환경이 열악한 대신 저렴한 주택들이 집중되어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사정이 어려운 청년층의 유입에 따른 임대료 상승으로 학생들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호남권 한 4년제 대학의 2인실 모습.


15% 미만 66개교 =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전국 195개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국·공립대(40개교)가 20.6%, 사립대(155개교)가 17.4%로 나타났다. 학교별로는 수용률이 15%에 미치지 못한 대학이 66곳(33.8%)이나 됐다. 서울시립대(7.4%), 인천대(9.7%) 등 국공립대 7개교와 세종대(5.6%), 이화여대(8.3%), 숙명여대(8.7%) 등 사립대 59개교였다. 수용률이 15%이상 30%미만인 대학은 76개교(39.0%)였으며 30%이상 45%미만은 28개교(14.4%), 45%이상 60%미만은 11개교(5.6%) 등이다. 수용률이 100% 이상인 대학은 8개 대학(4.1%)에 불과했다. 이들은 대부분은 소규모 종교대학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간 수용률 격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비수도권 대학의 수용률은 2011년 20.7%, 2012년 20.6%, 2013년 21.0%, 2014년 21.0%를 기록했다. 수도권 대학은 2011년 12.8%, 2012년 13.5%, 2013년 13.3%, 2014년 12.8%로 비수도권에 비해 크게 낮았다.

대학교육연구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숙사는 학생들이 안정적인 주거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필수 교육시설이며, 특히 원거리 통학 학생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더욱 필요하다"며 "대학은 적정한 규모의 기숙사를 건립하고, 이를 저렴한 비용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장학재단 자료에 따르며 전체 대학생 218만여명 중 학교 소재지와 다른 지역 출신은 88만명(40.5%)이다. 하지만 기숙사 수용인원은 35만7000여명에 불과해 53만여명이 학교 밖에서 거주지를 찾고 있다.

정부정책 부실·학교 무관심이 원인 = 교육계와 시민단체는 기숙사 수용률이 낮은 주요 원인을 정부정책 부실과 학생 주거복지에 대한 학교의 관심 부재에서 찾고 있다.

현재 기숙사 관련 규정은 '대학설립·운영규정'에서 기숙사를 지원시설로 분류해 놓은 것이 전부다. 수용 규모와 사용료에 대한 규정은 어느 곳에도 없다. 대학별 기숙사 수용인원을 전체 정원의 15% 이상으로 규정했던 '대학설치기준령'이 1996년 '대학설립·운영 규정'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즉, 기숙사 최소 수용률에 대한 규제가 완전히 사라져 대학 스스로 기숙사를 의무적으로 건립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정부는 주거약자인 대학생들의 복지 제고를 위해 기숙사 수용기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대학생 주거마련을 지원하고자 2013년 발표한 '대학생 주거지원 5개년 계획'에는 정부가 목표수용률을 25%로 설정하고 있으나, 이는 근거도 명확히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타 지역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므로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수립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들도 학생복지 차원에서 기숙사 확충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립대학의 경우 2013년 말 현재 적립금의 약 46.0%(약 3조7696억원)를 차지하고 있는 건축적립금을 기숙사 건립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말까지 의무식 강요 = 학생들과 교육계에서는 공급에 비해 수요가 월등히 많다보니 대학들의 '기숙사 갑질'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려운 관문을 통해 기숙사에 입주한 학생들 앞에는 기숙사 의무식 제도, 벌점제 등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윤관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지난 2012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숙사 의무식 제도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고 개선을 권고했음에도 여전히 국립대 40개교 중 19개교 기숙사는 1일 3식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나머지 대학에서도 의무 2식, 의무 1식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무식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지만 학교측은 요지부동이다. 실제로 충청지역 국립대학에 다니고 있는 이 모군은 지난 8월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주말만이라도 선택적 급식으로 전환해 달라"며 "학교측은 의무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학생들 또한 동의했다고 하는데 기숙사에 거주하는 동안 설문에 대한 어떠한 고지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교측은 이군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대다수 학교의 기숙사 생활 수칙은 학생들의 자율권을 상당 부분 침해하고 있으며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배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숙사 운영위원회의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와 기회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렇다보니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없으며 이에 따른 생활 수칙과 각종 규칙 역시 직접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아닌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상점과 같은 기준은 오히려 학생 간의 경쟁 또는 이미 정해진 기숙사 생활 수칙에 충실히 이행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관장이 인정하는 한에서만 상점이 부과되기에 그 기준 또한 생활관장의 판단 등과 같은 자의적인 내용이다. 만일 학교의 제도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을 시에는 상점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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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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