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가입 25주년, OECD 가입 20주년인데 ②

헌법·법률부터 노동기본권 제약

2016-12-13 11:13:52 게재

김선수 "노조법 '노조형법'으로 변질"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국제기준 무시

우리나라가 국제노동기구(ILO) 가입 25년이 되도록 노동기본권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한몫 거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법원의 판례나 헌법제판소의 결정에서 국제노동기준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헌법 개정 때 노동관련 조항을 국제노동기준에 맞게 고쳐야 하고,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ILO 아태총회에도 '박근혜 퇴진' │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 총회에서 김동만 한국노총위원장과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이 '박근혜·이기권 장관 퇴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한국노총 제공


지난달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노동기준에 비춰 본 한국 노동기본권-결사의 자유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국제심포지엄(한국노총·민주노총·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주최)에서 김선수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는 "한국에서 노동3권에 대한 억압적인 질서가 개선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유지된 데에는 사법기관이 기여한 바가 크다"며 "노동3권에 대한 제한과 금지·탄압 조항으로 가득 찬 노조법을 폐지하고 헌법 제33조와 ILO 핵심협약으로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헌법, 공무원 노동3권 제한 = 우리나라는 노동3권을 법률이나 판례에 맡기지 않고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헌법 자체가 노동기본권 선진화에 장애로 작용한다. 헌법 제33조 1항에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2항과 3항을 통해 모든 공무원의 노동3권과 주요방위산업체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군인과 경찰만' 예외를 적용한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ILO 제87호 협약에 미치지 못한다.

법률도 노동기본권을 제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3권을 구체화한 법률이 노조법이다. 노동법은 노사관계에서 우월적이고 지배적인 지위를 가진 사용자에 대한 일정한 규제를 통해 노사 대등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노조법은 100여개 조항 가운데 부당노동행위와 직장폐쇄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동3권을 제한하거나 부정하는 내용이다. 특히 노조운영과 활동에 대해 40여개의 형벌과 과태료 조항을 두고 있다. 1953년 전쟁 중에 제정된 최초의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에는 벌칙 조항이 10여개에 불과했고 벌칙도 최고 6월 이하의 징역이나 구류, 과료, 벌금형이 전부였으나 군사독재 정부를 거치면 대폭 늘었다.

김 변호사는 "노조법은 노동법이 아니라 치안경찰법"이라며 "노조법이 '노동형법'으로 변질된 것은 군사독재 정부가 근로자의 권리의식과 노동조합의 성장을 의도적으로 저지하면서 경제성장이란 명목으로 근로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관리와 통제 위주 노동정책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선진국이라는 독일의 경우 노조의 조직·운영·쟁의행위를 규율하는 일반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노사정 합의도 법무부 반대로 무산 = 법률도 문제지만 헌법과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결정은 더욱 심각하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국제노동기준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국내법에 배치되는 국제법규의 효력을 인정한 사례가 거의 없다.

ILO 회원국의 80% 이상이 비준한 결사의 자유(제87호·98호)와 강제근로 금지(제105호) 협약은 비준하지 않은 데다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로 볼 만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세계인권선언은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사회권규약의 단결권 보장 조항은 일반적 법률유보 조항 등을 근거로, 시민권규약의 단결권 보장 조항은 비준시 해당 조항을 유보했다는 것을 근거로 국내법적 효력을 부정했다.

김 변호사는 "노사갈등에서 노동3권과 사회정의보다는 시장근본주의의 법적 표현인 재산권 절대 원칙과 사적자치 원칙을 우선시 했다"며 "사법기관은 극단적인 법률실증주의 관점에서 노동3권에 관한 국제협약과 기준들의 법적 효력을 부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광택 국민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1998년 2월 노사정 제1차 합의에서 국제노동기준에 맞게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을 합의했지만 실무적인 검토과정에서 법무부가 반대해 입법화하지 못했다"며 "사법기관이 우리나라의 노동기본권 후진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ILO 가입 25주년, OECD 가입 20주년인데' 연재기사]
① 한국은 아직 노동기본권 후진국 2016-12-12
② 헌법·법률부터 노동기본권 제약 2016-12-13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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