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노믹스' 성공조건 | ③ 시장은 '진심' 재벌개혁을 바란다

헐값(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마침표, 코스피3000 시대 열자

2017-05-12 10:30:18 게재

지배구조 선진화 노동 안정화 최적기

실행능력·추진력 겸비 정부구성 관건

야당과의 협치·대기업 집단반발 변수

한국 증시 오랜 숙원 중 하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헐값 한국) 해소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기업들의 값어치를 지나치게 싸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지금껏 통용되는 용어다. 지정학적 위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기업 실적을 액면 그대로 못믿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마디로 세계 투자자들이 한국기업을 '비지떡'처럼 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코스피가 최근 새정부 출범과 내수부양에 기대감에 어렵사리 박스권을 탈출했지만 지난 6년간 1800~2200선에 갇혔던 것도 기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탓이다. 최근 3년간 한국증시 연평균 수익률이 0.3%에 그친 이유도 마찬가지. 증시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악재다. 경제 선행지표인 증시가 지지부진하다 보니 경제 시스템이 잘 돌아갈리 만무. 잠재성장률 하락에 고용사정은 최악으로만 치달았다.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경제난은 더 심해졌고 그 때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외쳤지만 늘 공허한 메아리였다.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인 '재벌 대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과 노사 관계의 불안정성'이 지난 9년간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에 박근혜 최순실게이트 등 되레 정경유착이란 병만 더 깊어졌을 뿐 기업지배구조 등 재벌개혁은 후퇴했다. 실제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ACGA(Asian Corporate Governance Association)의 기업지배구조 평가에서 한국은 2012년에 이어 2014년에도 주요 아시아 11개국 중 8위에 그쳤을 정도다. 시장이 문재인정부 출범에 전례 없는 기대감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 대통령은 10일 취임사를 통해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지만 동시에 재벌개혁에도 앞장서겠다"면서 "문재인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란 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일성이자 첫 화두로 재벌개혁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역대 정권과 달리 임기 초반부터 재벌·대기업에 대한 고강도 개혁 작업이 추진될 거라는 기대감이 충만해지는 순간이었다.

마주옥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문재인정부의 출범은 국내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 된다" 면서 "소액주주 권리강화·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긍정적인 변수"라고 말했다.

'변화'기대가 상승랠리 이끌어 = 문 대통령은 10대 대선 공약 가운데 세 번째로 '반부패·재벌개혁'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특권과 특혜 철폐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정치·사회 환경 조성 △재벌 자본주의 사회를 혁파해 포용적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 △부패청산을 통해 OECD 선진국 수준으로 국가 경쟁력 제고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이행하는 방법으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청산을 위한 가칭 '적폐청산 특별조사위원회' 설치와 부정축재 재산에 대한 몰수 추진 △재벌의 불법경영승계, 황제경영, 부당특혜 근절 등 재벌개혁 추진 △문어발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방지 △'국가청렴위원회' 설치 등 반부패 개혁 위한 제도적 장치 보완 등을 역설했다. '경제민주화'와 '재벌적폐 청산'을 기치로 가장 강력한 대기업 재벌 개혁 정책을 천명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물론 일부에선 재벌개혁의 첫 단추인 '경제민주화 관련 상법 개정안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기업의 자율성을 제한한다'며 반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기술인력 개발 투자, 고용창출·유지가 어렵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벌의 저항, 대기업의 집단반발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5% 안팎의 지분으로 그룹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될 경우 국민소득 증가는 물론 증시 상승의 기폭제가 될 것이란 게 시장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더욱이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에 반기를 든 '촛불혁명'의 힘으로 당선 된 문 대통령 입장에선 재벌개혁은 좌고우면 할 수 없는 시급하고도 절박한 숙제다. 코스피 위상만 봐도 그렇다. 코스피의 PBR(주당순자산비율)은 올 2월말 기준 0.97배로 청산가치(1배)를 밑돌고 PER(주가수익비율)은 유동성 장세였던 2015년 상반기 평균 (10.42배) 낮은 9.50배다. PER만 보면 중국(12.6배) 미국(18.40배) 일본(16.0배) 등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 평균인 12.6배보다도 낮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뺄 경우 코스피지수는 지금보다 최소 1.2배에서 최대 2배 가까이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번 대선 때 일부 후보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임기 내 코스피 3000시대가 온다는 주장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형렬 교보증권 연구원은 "문재인 정부가 수출 일변도의 산업구조, 기업과 가계의 불균형 등 한국경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변화'를 선택할 것이란 기대가 증시 상승랠리를 강화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지난 연말 대통령 탄핵 이후 코스피 수익률이 13%에 육박하는 것은 새로운 정부로부터 시작되는 변화와 개혁이 선진증시와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험난한 과정" =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에 있어선 국내 증시의 또 다른 참여자인 외국인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 실제 실현 가능성에선 다소 냉소적인 입장이다.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 신흥시장 그룹 회장은 문 대통령 당선 직후 국내 언론에 보낸 이메일 메시지를 통해 "재벌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나은 기업지배구조로 변화해 다른 글로벌 시장에 비해 한국 시장이 낮게 평가되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떨쳐내고 한국 기업들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부패와 권력남용에 대해 특히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면서 "문 대통령으로 인해 한국 주식시장 대부분을 좌우하고 있는 재벌 시스템의 개혁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 시스템이 약화되면 소규모 기업이 재벌에 의존하지 않고도 성장하고 번창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며 한국에서 이러한 기회를 발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독립 경제분석업체인 캐피탈이코노믹스도 이날 "한국 경제의 중기 전망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추진능력에 달렸다"면서도 "개혁에 나선다 하더라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이 40%밖에 안돼 개혁법안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냈다. 정부 추진 능력과 함께 야당과의 협치가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같은 날 칼럼을 통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개혁 의지가 강한 한국의 새 대통령이 약속한 재벌 개혁에 기대감이 높다"면서 "다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칼럼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낙관론을 갖는 것이 마땅하지만 과거 정부도 재벌 개혁에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이제 막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약속에서 외국 투자자들은 '데자뷔'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즈(NYT) 역시 앞서 8일치 기사에서 한국의 재벌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론의 부정적 인식과는 별개로 재벌들은 지금까지 상속세, 해외 투자자들의 외면, 내부 경영권 다툼 등의 다양한 과제 속에서 기민하게 적응하면서 정치적 힘을 강화해왔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재벌이 부패, 부의 불평등, 혁신기업 밀어내기 등의 각종 비판을 받고 있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주체라고 지적했다.

재벌들의 저항에 맞설 강력한 실행능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정부구성과 야당과의 협치가 결국 재벌개혁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게 내외부의 공통된 시각인 셈이다. '제이노믹스(문제인 대통령 경제정책)'의 성공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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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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