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트라우마, 사회적 치유 필요하다 │④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집요하게, 정확하게, 끝까지 진상규명해야 치유된다"

2017-08-17 00:00:01 게재

"대통령의 따뜻한 위로 고맙지만 이제 시작" … 진실 묻혀버리면 '사회불신'이라는 국민적 트라우마 남아

"트라우마라는 건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스트레스같은 게 아니에요. 아픈 만큼 삶이 붕괴돼 버리는 그런 내상이지요. 어느 날 몸 반쪽이 갑자기 날아가 버린 것과 같아요. 평생 자신과 함께 했던 부분이기 때문에 없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눈으로 보면 분명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심리적으로는 한동안 붙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없어진 부분이 아프고 미치겠는데 어쩔 도리가 없는 그런 상처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에 '치유공간 이웃'을 열고 세월호 때문에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씨의 이야기다. '삶을 붕괴시키는 내상' 트라우마는 과연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충분한 애도의 시간 주어져야 = 정씨는 이제라도 세월호 가족들이 온전히 가족을 잃은 슬픔에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가족상실을 받아들이는 치유의 과정을 걷기도 전에 정부와 투쟁부터 해야 했고, '시체팔이' '빨갱이' 등 온갖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지내왔던 시간이 2차, 3차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어 정작 가족을 상실한 1차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에도 돌입하지 못했다.

정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후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 정부와 전쟁을 했다. 지금이라도 세월호 가족들의 슬픔을 존중하고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면서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주라고 하면 흔히 가볍게 생각하는데 트라우마 사건에서는 마음껏 애도하고 그 사건과 그 감정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어야 더 빨리 빠져나올 힘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진상규명, 트라우마 치유 메커니즘 작동시킬 전제 = 1차 트라우마에 보다 더 깊이 몰입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첫 단계가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이는 정씨뿐만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을 지켜봐 온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트라우마는 내면의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외적 사건이 근본원인이기 때문에 트라우마 치유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위해선 외부요인에 대한 명명백백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같은 사회적 트라우마는 집단기억과 사회적 치유를 통해서만 아물게 할 수 있는데 사회적 치유가 되려면 진실규명과 법적·도덕적 처벌을 위한 책임을 밝히고, 트라우마를 일으킨 원인을 파악하고 개혁해서 희생과 트라우마의 대가가 헛되지 않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그런데 세월호 참사의 경우 사건의 진실규명과 책임소재 파악의 단계에서 치유의 과정이 발목잡힌 상태"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했던 1기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활동기간과 관련한 법적 논란에 휘말려 제대로 진상조사를 끝마치지 못한 채 조기해산한 바 있다. 활동기간 중에도 정부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노골적인 방해에 시달렸다.

집요한 진상규명 없어 집단적 트라우마 해결 안되는 일 반복 =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세월호 유가족과 면담에서 진상규명 의지를 밝힌 것은 세월호 치유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207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2기 세월호 특조위 설립 지원과 철저한 진실규명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진상규명 의지 선언이 확실한 진상규명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는 점에서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게 유가족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한 유가족은 "(청와대 면담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이걸로 다 해결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혜신씨는 "따뜻하고 다정한 대통령이 유가족들을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정확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되지 않아 아직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광주 5·18 피해자 예를 들었다.

정씨는 "전두환이 멀쩡하게 골프장 가고, 자서전 내는 것을 보면 당시 피해자들은 병원에 갈 정도로 앓는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연결되지 않으면 피해자들에게는 계속 2차적인 가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예"라면서 "집요하게 정확하게 끝까지 (진상규명을) 해내야 치유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선 그동안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집단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치유가 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됐다"고 말했다.

철저한 진상규명은 세월호라는 국민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치유책이기도 하다.

김혜진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그대로 묻혀 버리면 사회 불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막연한 공포와 불신을 갖고 있는데, 진상규명 과정을 통해 구체적 실체가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면 사회에 대한 신뢰가 형성돼 트라우마 치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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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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