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

2017-11-06 10:34:06 게재

전쟁과 평화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라는 경구다. 4세기 로마제국 군사전략가였던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Flavius Vegetius)가 남긴 말이다.

로마가 당시 세계패권을 차지함으로써 수백 년간 평화로웠다는 소위 '팍스로마나(Pax Romana)'에 근거를 둔 말로, 로마의 강성함으로 인해 평화가 왔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로마의 평화는 강력한 군사력 덕분에 가능했다는 말인 동시에 강력한 로마가 존재함으로써 주위 국가들도 함부로 도전하지 않아 국제정세도 안정됐다는 주장이다. 외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김준형 교수(한동대)는 지난 연말 펴낸 책 '전쟁하는 인간'에서 플라비우스 경구에 가려진 권력자들의 욕망에 대해 지적했다. 겉으로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적대감을 부추기고 외부 위협을 과장해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려는 권력자들이 역사에도 무수하게 존재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말이다.

무수한 역사가 증명하듯 총구에서 나오는 권력은 독재일 경우가 많다. 멀리서 예를 찾을 것도 없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세습권력이 모두 총구에서 나온 독재권력이라는 것이 김 교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전쟁 없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이나 평화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을 향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라고 공격한다"면서 "폭력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과연 철부지의 헛된 꿈일까"라고 되묻는다. 더 나아가 전쟁을 인정하고 군비 확장을 부르짖는 사람들을 매우 현실적이며 심지어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쉬운 문화에서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인류 역사로 볼 때 지난 5000년 동안 약 92% 기간이 전쟁 중이었으며, 단 8%만 평화의 시간이었다는 점은 매우 불편하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 교수 주장이다.

책에서는 전쟁의 정의와 전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 그리고 역사 속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을 다루고 있다.

얼핏 보면 전쟁론이라고 보기 쉬울 정도다. 그러나 정반대다. 전쟁이라는 창을 통해 끊임없이 평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전쟁은 해결의 일부가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평화야말로 곧 문제의 해결이다"라고 강조한다.

대표적 평화학자 중 한 명인 디터 젱하스가 말한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pacem)"른 경구를 책의 맨 마지막에 넣은 것도 그의 평소 생각과 다르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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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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