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조작 피해 소멸시효 없이 국가배상해야"

2017-12-08 10:58:38 게재

법무·검찰개혁위, 특별법 제정 권고·소급적용

검찰 밤샘·심야조사 금지, 최대 오후 11시 제한

고문·조작 등 반인권적 범죄로 인한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소급적용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하는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안이 나와 눈길을 끈다. 또 인권침해 논란을 빚어온 검찰의 '밤샘조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등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의 인권을 대폭 강화하는 개혁 방안이 추진된다.

7일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 서울대 교수)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불법구금·고문·증거조작 등 반인권적 범죄의 국가배상책임에 소멸시효를 없애는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그간 소멸시효를 이유로 배상금을 받지 못했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안도 법제화하라고 법무부에 제6차 권고안을 제출했다.

그동안 정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을 통해 국가차원의 진상조사를 해 왔다. 피해자들은 이를 근거로 재심을 신청해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았다. 국가는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및 배상(보상)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소멸시효 배제 법률안 제출 권고 = 하지만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에 대해 국가는 소멸시효를 이유로 피해구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게다가 대법원은 2013년 12월 판결을 통해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이었던 소멸시효를 6개월로 대폭 단축시켜 버렸다.

위원회는 "이런 국가의 태도는 반인권적 범죄 피해자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가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사실상 방해해 2차적 피해를 가하는 것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며 "국가배상 책임을 몇년의 세월이 지났다고 배상책임을 면하려는 것은 인권 보장을 근본으로 하는 민주국가의 기본가치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위원회는 "공권력을 악용해 저지른 고문·조작 등 반인권적 범죄를 일체 용납하지 않으며, 그 피해 구제를 위한 종합적 조치를 취할 것을 정부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채택한다"는 권고안을 냈다.

위원회는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정부가 소멸시효 항변을 하지 말아야하고, 관련 국가배상에는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라고 권고했다. 또 대법원의 소멸시효 단축 판결 등으로 인해 배상받지 못한다는 판결이 확정된 피해자를 대상으로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안(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하고, 이미 지급받았던 배상금을 반환해야 하는 피해자의 경우 반환을 요구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위원회는 소멸시효 적용의 근거가 돼 온 현행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는 헌법재판에서 정부는 해당 법률조항을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 적용하는 한에 있어서는 위헌이라는 견해를 갖고 임하도록 권고했다.

◆"최소 3일전에 소환 통보" = 이와 함께 위원회는 이날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 수사준칙' 개정과 관련한 개선방안을 담은 제5차 권고안을 전달했다.

위원회는 우선 피의자를 일과 시간에 불러 이튿날 새벽까지 조사하는 밤샘조사 관행을 금지하고, 조사를 오후 8시까지 끝내도록 권고했다. 부득이하게 조사를 계속해야 할 경우에도 조서 열람을 포함해 오후 11시에는 모두 마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밤샘조사는 조사의 연속성 등 실무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피의자를 체력적·심리적 궁지로 몰아넣어 자백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비판이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위원회는 또 피의자 방어권 보장을 위해 하루 전에 급작스럽게 출석을 요구하는 '기습' 소환 통보 대신 최소 3일의 여유를 두고 피의자를 불러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개혁위는 긴급한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예외를 두고, 피의자가 다른 일정이 있거나 변호인과 상담하기 위해 출석 일시 변경을 요청할 경우 가급적 이를 존중하라고도 권고했다. 또 피의자에게 출석을 요구할 때는 죄명 및 피의사실의 요지를 고지해야 하고, 단시일 내에 5회 이상 연속해 출석을 요구한다면 반드시 인권보호관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권고했다.

조사 도중에는 적어도 2시간마다 10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하고, 피의자의 메모할 권리를 인정하는 내용도 권고안에 포함됐다. 피의자를 압박하기 위한 별건 수사를 금지하는 권고 역시 인권보호를 위해 중요하다고 개혁위는 밝혔다. 별건 수사는 조사받는 피의자에 대해 전혀 다른 혐의에 대해 묻거나 조사하는 것을 말하며, 부적절한 수사 관행의 대표 사례로 꼽혀왔다. 기존 혐의나 검찰이 원하는 사실 관계에 대해 자백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범죄 혐의를 꺼내는 식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피의자는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그동안 검찰 수사 관행에서 사건 관계인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데 소홀하거나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검찰이 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의 인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인권보호수사준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변호인 참석을 불허하는 이른바 '피의자 면담' 금지 등 조사 방식에 대한 권고도 나왔다. 현재 검찰은 '피의자 면담'에 대해 변호인의 참여를 사실상 허용하지 않고 있다. '신문'이 아니라 '면담'이기 때문에 변호인의 참여가 필요 없다는 논리에서다.

이에 대해 개혁위는 "변호인 참여권을 회피하는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며 "그 어떤 명목으로도 수사 중에 변호인 참여를 불허하거나 변호인에게 퇴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일선 검찰의 수사와 관련해 세부적인 내용이 많아서 검찰의 의견을 들어보고 조속한 시일 내에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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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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