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규 변리사의 '재미있는 특허 이야기' ⑥

판결문 공개에 대한 단상

2018-02-26 10:46:01 게재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요즘 판결문 공개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한 것 같다. 판결문 공개에 관한 법률을 국회와 대법원이 조율하고 있는 것 같고 대법원도 전향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판결문이 완전히 공개되길 바라는 기대와 함께 또다시 논의에 그치고 말 것인지 하는 우려가 교차한다.

헌법 제109조에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라고 규정한다. 이 헌법상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판결문이 완전하게 공개되지 못하는 데에는 법원측이 내세우는 이유가 있다. 개인정보보호라는 이유다. 판결문이 공개되면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다. 얼핏 듣기에는 아주 그럴듯하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어떻게 당사자들은 물론 대리인, 판결문을 작성한 판사 이름, 소수의견(반대의견)까지 모든 것을 공개하는 걸까? 그들에게는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이 없는 걸까? 법원측이 내세우는 개인정보보호를 빙자한 이유의 허구성을 살펴본다.

만일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다면 당사자들이 먼저 판결문 공개를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당사자는 하나도 없다. 우선 원고와 피고가 서로 잘했다고 다툰 결과 정당하게 판결이 나왔다고 하자.

이때 승자는 '보라! 내가 정당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판결문 공개를 꺼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공개하여 그의 당당함을 알려야 한다. 패자는 어떤가. 패자는 다시 두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 판결이 정당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판결에 수긍하게 된다. 설사 판결이 공개된다 하더라도 누구를 원망할 상황이 아니다. 담담히 판결문 공개를 받아들여야 한다.

두 번째는 그 판결이 어딘가 미흡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이 경우라면 패자는 판결문이 반드시 공개되기를 원한다. '보라! 이 판결문이 이런 점에서 잘못되지 않았는가! 이것은 상급법원에 항소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판결문 공개를 원할 것이다.

다음으로, 원고와 피고가 서로 잘했다고 다퉜지만, 어느 한쪽이 전관예우나 아니면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승소했다고 하자. 이 경우 패자는 판결문 공개를 절대적으로 원한다. 부당한 판결을 세상에 알려 그 잘못이 바로 잡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승자는 판결문 공개를 원치 않을 것이다. 이때는 법원도 승자와 같은 편이다. 결론적으로 판결문 공개를 꺼리는 경우는 전관예우 아니면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부당한 판결이 나온 경우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비리에 연루된 승자와 판사 그리고 그 대리인만이 판결문 공개를 극도로 꺼릴 것이다. 그런 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런 조건없이 모든 판결문을 완벽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현재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당사자를 익명으로 처리하는 것은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법원의 고도의 위장술이자 희대의 사기극이다.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정경유착 등으로 물들지 않고 떳떳하다면 판결문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특허청에는 특허심판원이 있어서 특허에 관한 각종 심판을 한다. 그러나 모든 심결문이 공개되지는 않는다. 미국특허청의 경우는 모든 심결문을 하나도 빠짐없이 'USPQ'라는 제호로 1913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공개하고 있다. 특허청은 모든 심결문을 공개하여 공정하고 수준높은 심판을 하여야 한다. 특히 특허 사건은 이미 공개된 발명기술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정보나 명예훼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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