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규 변리사의 특허 이야기 ⑩

상표 '사리원면옥' 무효의 황당함

2018-04-23 10:45:50 게재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변리사

1951년 문을 연 대전 '사리원면옥'('대전 사리원')은 1996년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해 등록을 마쳤다. 2015년경 대전 사리원은 대전에 3곳, 서울에 1곳의 식당(현재는 5곳)을 운영 중이었다.

냉면이 주메뉴였지만 만두, 불고기도 함께 팔았다.

불고기를 주메뉴로 냉면도 함께 팔았던 서울의 '사리원'('서울 사리원')은 1992년께 서울 도곡동에서 식당을 시작하여 서울에 8곳, 수원에 1곳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2015년 8월 서울 사리원은 대전 사리원으로부터 "'사리원불고기'가 상표권을 침해했으니 식당 이름을 바꾸라"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이때부터 양측의 지리한 법정투쟁이 시작되었다. 대전 사리원은 서울 사리원을 상대로 상표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였고,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서울 사리원은 간판을 '사리현'으로 바꾸거나 '사리원' 간판에서 '원'자를 떼어냈다.

가처분에 맞서 서울 사리원은 '사리원면옥'에 대해 무효소송을 청구하였다. (상표는 등록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등록이 애시당초 잘못된 것이라면 무효로 될 수 있다). 상표무효소송은 특허청(심판원), 특허법원, 대법원을 거쳐 3심제로 진행하는데, 특허청과 특허법원은 '사리원면옥'이 무효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무효라고 하였다.

서울 사리원이 제기한 무효사유는 '사리원'이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라는 것이다. 상표법에서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지명)'은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한다. '사리원'은 황해도에 있는 도시로서 상표등록 당시 현저한 지명에 해당되어 등록을 받을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잘못 등록되었기 때문에 무효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허청과 특허법원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1996년 당시를 기준으로 본다면 사리원은 일반 수요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현저한 지명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양측의 투쟁 과정이나 대법원의 판결을 보고 있노라면 기막히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서울 사리원은 대전 사리원이 상표등록을 받기 전에 '사리원'을 먼저 사용했는데 왜 간판을 바꾸어야 했을까? 상표등록만 받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가처분 결정은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

상표등록을 받고 20여년 동안 사용해온 상표가 졸지에 무효로 되어 상표권자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 등록받아 20년 이상 사용해온 상표가 무효로 되는 경우는 일반명칭화가 된 경우 외에는 없다. 일반명칭화의 대표적인 예는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은 처음에는 상표이었으나, 누구나 사용한 결과 일반명칭이 되어 취소되었다. 더욱이 대법원은 사리원이 20여년전에 현저한 지명이었다고 판단하였다. 신과 함께 한 신과 같은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명 상표는 현저한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명과 상품(서비스업)과의 관계를 판단하는 것이다. 금산-인삼이나 강화-화문석과 같은 것들이 등록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사리원은 면옥이나 불고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등록받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지명 상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기막힌 일들이 벌어졌다. 또한 상표등록만 받으면 장땡이라는 사고가 더 큰 화를 불렀다.

이 사건에서의 최선의 해법은 공존상생이었다. 서울측의 선(先)사용도 인정해주고 대전측의 상표등록도 인정해줘서 서로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서로가 윈-윈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양측은 양보와 타협을 몰랐다. 상표법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법원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은 20년간 사용해온 상표를 무효시킴으로써 상표제도를 무력화시킨 판결로 기록될 것이다.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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