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에 내각제→대통령제로

2019-06-13 11:23:07 게재

이승만, 권력구조 개입

생존 개헌의원 증언

대한민국 권력구조를 대통령제로 바꾼 것은 이승만의 작품이었다. 헌법기초위원회는 1948년 6월 3일에 구성됐다. 법조계 교육계 등의 유진오 권승열 윤길중 등 10명이 전문위원들은 유진오의 내각책임제 양원제 안을 중심으로 법전편찬위원회안, 임시정부 헌장, 입법의원 약헌 등이 참조됐다. 12일 기초위원회는 내각책임제와 단원제헌법안을 채택했다.

사흘뒤인 15일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에 출석한 이승만 의장은 내각책임제 헌법초안에 대해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대통령책임제로 변경해줄 것을 요구했다. 원내 1당인 한국민주당이 내각책임제 주장을 굽혀 대통령제안을 수용했다. 이승만 국회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 거의 확실했던 당시의 정치상황에서 이 의장을 제외한 정치문제 논의는 무의하다고 본 것이다. 22일 제 17차 기초위원회에서 내각책임제헌법안을 대통령책임제헌법안으로 바꿨다. 23일 본회의에 오른 헌법안은 12차례의 토의를 거쳐 전문과 10장103조로 확정됐다. 대통령제, 단원제를 골자로 한 헌법안을 7월 12일 오후 12시28분에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17일 이승만 대통령이 서명해 공포했다.

국회 월간지인 국회보가 지난 1996년 6월에 '제48주년 제헌절' 기념으로 가진 생존 제헌국회의원 원장길, 김인식, 민경식, 이상돈, 이석주, 정준, 조한백 등 7명과의 대담에서는 당시 권력구조의 변경상황이 정확하게 나온다. 이들은 "내각책임제 양원제 3권분립을 담은 유진오 전문위원의 초안을 중심으로 토의한 결과 6월 12일에 내각책임제 단원제 3권분립을 포함한 내각책임제 헌법안을 채택했다"고 했다.

내각제가 대통령중심제로 바뀐 것에 대해서는 "당시 헌법기초위원회에서는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중심제를 주제로 하여 격논중이었는데 처음에는 내각제가 우세했다"면서 "그러나 당시 구심점이었던 정치원로이자 국회의장인 이승만 박사에게 헌법기초위원회가 자문을 구했는데 이 박사가 '건국기초작업이 일단 매듭지어진 다음에 내각책임제의 정부형태를 택하여도 늦지 않는다'며 대통령제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이박사께서 내각책임제 제헌을 강행할 바에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는 말도 있다"며 "당시 정치상황이 이 박사를 제외한 정치문제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던 만큼 이 박사의 발언에 따른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강조했다.

1950년 1월 27일에 서상일 의원 외 78인이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안을 제출했으나 같은해 3월 14일 표결에서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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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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