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업자 감사부담' 낮추려 위법조례 추진

2019-06-19 11:22:03 게재

서울시·경기도 의회, 회계투명성 고려 안한 조례 개정

감사업무에 세무사 포함 … 사업비 검증 대폭 약화시켜

서울시와 경기도 의회가 위법한 조례까지 만들어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받아 위탁사업을 하는 민간업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건을 겪으면서 회계투명성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의회는 이같은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기업의 외부감사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외부감사법이 개정된 이후 기업들의 반발이 커지자 금융당국이 기업의 부담을 이유로 각종 완화방안을 내놓고 있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하지만 경기도의회는 금융위원회와 경기도청이 위법한 조례라고 수차례 언급했지만 개정조례안을 지난달 통과시켰다.

개정조례안은 지자체 예산을 받은 민간 수탁업자의 사업비와 관련한 회계감사 조항을 '사업비 정산보고서 성실성 확인'으로 바꾸고 업무를 수행할 전문가를 회계사뿐만 아니라 세무사까지 포함시키는 내용이다.

도의회가 개정조례안을 통과 시키기 전인 지난달 17일 열린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임종철 경기도청 기획조정실장은 "조례안은 상위법 위반이라서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재의요구 대상이 된다"며 "변호사의 법률자문도 받고 중앙부처의 의견도 받은 결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도의원들은 임 실장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며 질의를 종결했다.

일부 의원은 세무사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영역을 더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세무사까지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행정사나 법무사는 안되나, 행정사나 법무사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공인회계사법을 위반하지 않으려고 민간위탁사업의 사업비 감사를 낮은 단계의 확인 정도로 검증 수준을 크게 낮추는 방안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감사는 상당히 강도가 높은 검증 단계로 봐야 하는데, 이를 세무사가 수행하기는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공인회계사법에 회계사의 업무로 명시한 것"이라며 "세무사를 비롯한 다른 전문 자격인들이 할 수 있도록 하려면 감사보다 훨씬 낮은 단계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업무에 있어서 공인회계사와 세무사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청년공인회계사회도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국가가 부여한 자격제도를 형해화(부실화)하는 것이라면 특정 직역의 편의를 봐줄게 아니라 누구나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개정의 취지에 더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공인회계사회는 "공인회계사의 모임이기에 직역 다툼으로 보일 수 있어 가급적 대응을 하지 않으려했으나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으니 잘못된 주장이 사실처럼 유통되고 있어 의견서를 제출하게 됐다"며 "그동안 민간위탁 사업에 대한 투명성을 향상하기 위한 제언을 몇 가지 했는데, 개정안은 그런 제언과 전혀 무관한 개악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조례로 인해 민간위탁사업의 투명성이 크게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경기도의회는 '회계감사'라는 표현을 '사업비 정산 검증', 다시 '사업비 정산보고서 성실성 확인'으로 바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당 표현들이 모두 '회계감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법적 결론이 날 경우 상위법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법위반이라 아니라는 결론이 날 경우에는 지자체 예산이 투입된 위탁사업에 대한 검증 수위를 크게 약화시켜서 부실감사 개연성을 높였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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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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