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정사 100년을 걷다 | (19) 한일간 조약과 제협정 비준동의안 심사특위 ①

정일형 "한일조약은 위헌·무효" … 법·절차 허점 7가지 제시

2019-08-29 12:51:55 게재

외무장관출신 5선 의원

"대한민국 아닌 조선 표기, 북한 염두 둔 것"

"국회 비준요청 방식, 국회법 등에 맞지 않아"

"영문 없어 국제관례에 위배, 무효 조약"

외무부장관, UN총회 한국수석대표를 지낸 당시 5선의 야당 정일형 의원이 한일 협정 비준동의안을 정부에 돌려보내야 한다며 7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1965년 8월3일 한일간 조약과 제협정 비준동의안 심사특위 3차 회의에서 발언권을 얻고는 "본 위원은 지난 7월14일 제521회 국회 제1차 본회의에서 보고 발의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에 맺어진 동경조약과 모든 협정 및 그 부속문서의 비준에 관한 동의안은 그 발의자체가 무효요 또한 그 조약과 부속문서들도 위헌적이요 국회법을 무시한 보고이므로 무효요 또한 국제적 실례로 보아도 그 문서자체에 미비한 점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으므로 일단 정부에 반송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한다"고 말했다.

야당 거부한 한일협정비준특별위원회 | 1965년 8월10일 한일협정 비준동의안의 심의를 위해 한일협정 비준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 으나 야당의 거부로 심의 첫날부터 야당 의석이 텅빈 채로 진행되었다. 사진 제공 국회 도서관


이어 "동시에 국회의 발의절차상 불법과 미비된 점이 있어 7.14 발언은 무효임을 역설하는 동시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며 "백만명이 넘는 우리 동포들을 일본의 침략전쟁에 끌어가 징병 징용과 일백억불에 추정되는 착취와 강탈을 자행한 것이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정당한 우리 민족의 청구권조차 정식으로 받지 못하고 무상공여니 독립축하금조로 10년에 3억불을 받아오는 것으로 만족을 일삼고 그 수취를 천추에 남기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일형 의원

정 의원은 한일협정 비준안 반환의 첫 이유로 "국회법을 무시한 발의"라고 했다. 그는 "국회법 제 70조 즉 의사일정 작성에 관한 관례에 의하면 의장은 개의일시 부의안건과 그 순서를 기재한 의사일정을 작성하고 미리 국회에 보고하기로 되어 있다. 제66조 정신에 의해 오전10시에 개의하며 의장이 직접 사회함이 관례요 성원보고를 해왔고 토론안건과 그 순서를 작성해서 기재함이 정상적인 운영방식"면서 "7.14 회의에서는 분명히 정족수 보고도 없었고 의장도 등단하기 전에 불법적이요 날치기 개의를 장부의장이 선포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유엔도 정식국가로 인정했지만 조약에는 '조선'으로 언급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한일)기본조약 제3조에 의하면 조선에 있는…조선이라고 했다"면서 "조선에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임을 확인한다고 함은 일본이 북조선 정권문제를 염두에 두었다. 이는 심대한 과오임을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지적한 사항을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셋째 이유로는 "국제적 관례에 의하면 해석상 상위점과 난해한 경우에는 흔히 영문본을 작성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함이 관례가 되어 있으나 기본조약외에 협정 및 부속서류중에는 차관계약 외에는 영어첨부가 없다"는 점을 지목했다. 그는 "이동원 외무장관은 '시간이 없고 또한 일본측이 꺼려함으로 준비하지 못했다. 영문을 하려고 하면 몇 달이 걸릴 것이다'라고 해왔다"고 공개하면서 "14년을 끌어오던 한일회담이 한두달 지연된다고 해서 이와같은 많은 조약과 협정 그 부속서류 수십항을 (서둘러) 체결해야 하겠느냐"고 따졌다. 또 "만약 자체내의 많은 미스와 중대한 난점과 해석상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 국제조약에 영문을 첨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제적 관례나 요식행위에 있어서도 일대 모순이요 실책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고도 했다.

1963년12월17일 제6대 국회의원 선서.


네번째로 지적된 반송이유에 대해서는 "작년 3월27일 국회의결 한일 국회회담원칙에 전면 배치되는 조약을 체결했다"고 했다. 정 의원은 "만장일치로 한일회담에 대한 원칙을 의결했고 제2항에 의하면 합의내용이 우리 국민이 납득하는 합리적인 것이어야 하며 또한 최대한의 국가이익이 보장되는 조건하에서만 체결이 되어야 한다고 돼 있다. 기본관계에서는 일본의 침략성을 노정한 모든 조약은 무효임을 확인토록 해야 한다고 하였고 한일 양국간의 비정상적인 과거관계를 충분히 청산함이 주요골자이었다. 청구권관계에서는 최대의 청구권을 일시불로 하고 특히 일본의 부당한 대한수입제한조치 등 차별적 무역거래를 지양함과 동시에 대일관세특혜조치에 의한 교역의 증대로써 상호번영을 기하도록 한다고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다섯째는 "일본의 9월 비준회의에서 통과될때까지 우리국회도 신중한 고려와 심사를 연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일조약이 굴욕적이요 매국적인 것인가, 상호평등이 수교조건인가의 쟁점과 시비는 결국 일본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냐에 달려있다"면서 "일본이 과연 어떻게 실행하느냐, 일본의 저의와 내용도 다 가려내기 전에 심사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히 국회도 정부의 역사적 과오를 뒷받침해주는 데 찬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섯째로 제시된 것은 의원들의 연구와 이해, 그리고 국민들에게 알릴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 의원은 여당을 향해 "여러분은 어찌해서 이와같이 국가적 이해와 한일조약만은 조인한지 불과 22일만에 그것도 비합법적으로 발의해야만 하는지 우리국민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는 "일본정부 경제침략을 막기위한 국내법의 제정과 준비조치도 마련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침략을 막으려면 정부는 먼저 법률과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며 "국내법을 정비해서 일본의 부당한 경제침략을 막을 수 있도록 정신무장과 법률제정이 필요하건만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과 침략방지책 없이 비준동의를 제안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안은 3명의 동의를 얻어 정식 안건으로 채택 곧바로 표결에 들어갔다. 표결결과 재석 28일 중 찬성 10명, 반대 16명으로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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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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