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정사 100년을 걷다 | (21) 하루만에 통과시킨 인사청문회법안

근거없는 의혹 질의·후보자 허위진술 징계조항, 막판 삭제

2019-09-26 11:05:30 게재

운영위 통과안을 여야가 다시 만져 3군데 손봐

"거짓진술 제재 없으면 청문회 존립 자체 좌우"

소위·공청회 생략, 하루에 상임·법사위·본회의

2000년 6월 19일 아침부터 국회 안은 미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본회의가 잡혀있고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야당인 한나라당의 원내총무와 수석부총무가 만났다. 인사청문회법 제정안을 확정짓기 위한 마지막 조율작업을 해야 했다. 여야가 인사청문회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여야 합의안은 오전 10시58분 운영위 전체회의에 바로 올라갔다. 한나라당 수석부총무인 김무성 의원이 제안설명에 나섰다.

이한동 총리 후보자에 대한 첫 인사청문회 | 2000년 6월 26일부터 이틀간 이한동 국무총리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장 김덕규)가 국회 145호실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열렸다. 자료 국회도서관


◆원흐룡 자료제출기준 완화 = 오장섭 의원이 인사청문회 공개여부를 짚었다. 그는 "14조에 보면 인사청문회의 공개에 대해 '위원회의 의결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했다"면서 "국가 기밀이라든지 개인의 신상문제든지 만일 의결이 안 되었을 경우에 그러면 공개돼야 된다? 이 법은 법의 취지와도 안 맞지 않느냐"고 따졌다. 여당 수석부총무인 천정배 의원은 "국가기밀에 대한 사안인지 여부가 누가 결정하겠는가? 역시 (청문위원회)자체적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고 그 경우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야당소속 원희룡 의원은 자료제출 요구 기준과 관련해 "'서류제출요구'에서 전산문서나 전산자료 등 서류 이외의 여러 가지 자료들이 많이 있어 서류를 자료로 바꾸어서 제정의 필요가 있지 않나"고 요구했다. 원 의원은 또 "국가기관 등에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그 정족수에 관해 위원회 의결로 돼 있다. 결국 과반수의 의결이 필요한 것으로 해석이 된다"며 "인사청문회의 경우 자료제출을 광범위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취지에서 볼 때 재적위원 3분의 1이상의 요구로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완화시켜서 규정할 것을 제의 드린다"고 했다. 여야 수석부총무인 천정배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실무협의과정에서 놓친 것 같다"며 수용했다.

여당도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원성 의원이 징계조문에 들어가 있는 '허위사실임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진실인 것을 전제로 하여 발언한 경우'를 '주의의무 규정'의 징계사항에 넣고 "허위사실뿐만 아니라 미확인 사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한 것처럼 발언해서 착오에 빠뜨리는 경우도 같이 넣어서"라고고 했다.


김무성 의원이 "허위사실과 함께 미확인 사실을 넣자는 얘기는 내용적으로 아주 큰 차이가 있다"며 "내용을 바꾸자는 것은 다소 무리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천정배 의원이 이 의원을 거들었다. 천 의원은 "15대 국회에서 여러 차례 청문회도 있었는데 가장 국민적인 지탄을 받은 부분이 허위 사실 또는 아직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폭로를 하고 답변자가 분명하게 아니라고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중복해서 자꾸 주장하는 것은 반성해야 된다"며 "과거처럼 허위의 폭로가 무차별 허용되어서는 효율적인 운영이 곤란하고 국민에게도 또 실망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무성 의원은 "민주당측이 주장하는 것은 이 법을 만드는 우리 국회가 국회 스스로의 권익을 무시하는 자학적인 표현이다"며 "대법관 6명의 임기 날짜를 맞춰 주기 위해 이 법을 꼭 통과시켜야 된다는 대전제하에서 양보해서 그나마 징계조항에 '허위사실'을 넣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균환 위원장이 정리했다. 정 위원장은 "양쪽을 다 충족시킬 수 있는 안을 고민했고 불충분하나마 이러한 법안이 나왔다"고 마무리했다. 운영위는 수정안을 의결하고 곧바로 회의를 중지했다. 오후 12시 20분이었다.

◆징계조항 없애고 = 법사위는 이날 오전 11시23분에 열렸다. 오후 6시 41분에 인사청문회법안이 상정됐다. 이 사이에 여야 총무단이 만나 운영위 통과안을 손봤다. 최연희 의원은 "운영위원회에서 회부돼 온 인사청문회 법안의 내용에 대해 사전에 여야간에 협의한 결과 일부 조항을 수정하기로 했다"면서 3가지 변경안을 내놓았다. 그는 "18조 주의의무 규정에 위원이 허위사실임을 알고 있음에도 진실인 것을 전제로 하여 발언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을 추가했다"며 "19조의 징계조항에 대해서는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합의를 보았다"고 했다. 또 "공직후보자로부터 모두발언을 청취한 후 질문 답변을 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만 모두 발언 전에 공직후보자로부터 먼저 선서를 받은 후에 모두발언을 청취하도록 하여"라며 "공직후보자는 선서는 하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에 따른 징계대상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한나라당 정인봉 의원이 나섰다. 그는 "자질을 검증받는 마당에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에서의 증인과 유사하게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며 "청문회에서 거짓된 일들을 이야기했을 때 이것에 대한 제재에 관한 아무런 규정 없이 그저 선서만 듣는 것은 청문회 존립 자체를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재조치가 빠져있는 것이 결국 이 법안의 실효성을 지극히 의아스럽게 만드는 것"고도 했다.

최연희 의원은 "공직후보자도 진실을 답변하겠다는 국민 앞에서의 맹서이고 또 질의하는 국회의원도 정정당당하게 질의를 해서 혹시 질의내용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징계대상은 곤란하다. 이래서 징계조항을 빼면서 여야가 타협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순형 의원은 새롭게 만드는 제정법인데도 소위심사 뿐만 아니라 공청회도 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했다. 조 의원은 "심의할때 공청회 했냐"면서 국회법 58조5항을 제시했다. 그는 "국회 운영위가 국회운영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위원회인데 국회법을 좀 중시해야 됐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인사청문회법은 오후 7시48분에 본회의에 올라가 별 이의없이 6분만에 통과됐고 나흘후인 6월 23일 공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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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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