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통제 조치, 과학적 효과가 있을까

"전염병 확산시, 입국차단 별 도움 안돼"

2020-03-12 11:46:08 게재

초기 질병전파 억제효과, 질병유입은 차단 못해

역학논문 공통 지적 … 이태리 항공차단 속 확산

'중국인이나 중국에서 온 여행객들을 빨리 차단했으면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주장은 과연 합당할까.

질병 예방과 관리를 연구하는 역학자들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대규모 전염병이 확산될 때, 입국 차단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여행제한은 적게는 몇 주에서 많게는 한 달 정도의 질병 전파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질병유입 그 자체를 차단하지는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공중보건 긴급 상황에서 사람과 물품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효과적이지 않고, 오히려 제한은 필요한 원조 및 기술 지원을 방해하고 해당 국가에 부정적인 사회적 및 경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이 11일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그는 동시에 통제될 수 있는 팬데믹의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진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 전경. 사진 YTN 영상


◆항공여행이 미치는 영향 실증 연구 = 서울대 의학과 이 모씨와 KAIST 경영공학과 석사과정 강 모씨는 '언더스코어'란 유튜브 채널에서 이 문제를 분석했다. 지난 4일자 '중국인 입국 금지는 과학적인 효과가 있을까'란 동영상에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황승식 교수와 존스홉킨스 공중보건학 이호준 박사의 자문을 얻어 4편의 역학자 논문을 정리했다.

지난 2006년 미국 하버드 의과대 연구팀은 '항공여행이 미국의 지역간 인플루엔자 확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적 증거'란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 2001년 미국 본토에서 9.11 테러로 항공편 이용자가 급감했고, 이것이 계절 독감으로 알려진 인플루엔자 확산에 어떤 효과를 주었는지 분석한 것이다.

하버드 의과대 연구팀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주간 인플루엔자 및 폐렴 사망률을 사용해 미국내 지역간 확산률과 인플루엔자 시기를 측정했다. 언더스코어는 "그 결과 테러로 인한 여행 감소는 유행기간을 조금 늦추기만 했을 뿐, 감염자 수에는 그리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가로축은 실제 보고된 확진자수, 세로축은 우한지역 교통량으로 예측한 감염자수. 싱가포르를 기준으로 회색선을 그리고, 위쪽에는 예측보다 확진자가 적은 국가들, 아래는 예측보다 많은 국가들을 표시했다. 만약 모든 국가들이 감염자를 전부 다 발견했다면 점들은 이 선 위에 놓여야 했다.(오른쪽 사진)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점들이 회색 선 위쪽에 찍혀 있다.(왼쪽 사진) 아직 각국 정부들이 충분히 감염자들은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사진 유튜브 '언더스코어' 영상


◆"에이즈환자 여행제한 효과 없어" =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HIV바이러스 확산사례도 분석했다. 에이즈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여행제한이 생겼다. 193개 세계보건기구(WHO) 가입국 중 무려 45개국이 HIV감염자의 여행을 제한하고 있지만, 확산을 막는데 효과는 없었다.

언더스코어는 "왜 여행제한이 효과가 없었을까"란 의문을 던진 후 "어떤 국가에게 외부에서 유입되는 바이러스보다 그 국가 안에서 이루어지는 고위험 행동들이 더 많은 감염을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에이즈의 특성상 진단이 까다롭고 감염자들을 걸러 내기도 쉽지 않다. 또 여행객들이 전 세계 한두 명이 아니다 보니 일방적으로 입국 제한을 하는 것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2001년 사스와 2014년에 에볼라도 동일한 결과를 보여준다.

언더스코어는 "여행제한은 적게는 몇 주에서 많게는 한 달 정도의 질병 전파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질병 유입 그 자체를 차단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언더스코어는 "물론 아프리카나 남미 등의 저소득 국가라면 몇 주라도 늦추는 게 방역 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WHO에서 이들 국가에게 마스크나 방역복장 같은 물품들과 진단 설비를 지원해 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 질병이 이미 유입된 후 라면 그 효과는 사라진다"며 "이런 결과는 특정 국가의 문만 걸어 잠그면 단순히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우리의 통념과 상당히 다르다"고 덧붙였다.

◆선제적 완벽한 입국금지는 상상속 개념 = 언더스코어는 이런 결과에 대해 최초 감염자의 입국을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언더스코어는 "우리가 점쟁이가 아닌 이상 최초 입국자가 누군지, 그리고 언제 입국했는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전염병 초기에 외국인 입국을 차단해도 이미 감염자가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하면 훨씬 더 많은 감염자를 발생시킨다. 애초 국제교류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현실세계에서 선제적이고 완벽한 입국금지는 불가능한, 그저 상상 속의 개념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는 입국금지 같은 제한조치를 권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가 2월 29일 '코로나19 발생과 관련해 국제여행에 대한 WHO 권장사항'을 발표했다. WHO는 '공중보건 긴급상황에서 사람과 물품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증거가 있다. 제한은 필요한 원조 및 기술 지원을 방해하고, 사업을 방해 할 수 있으며, 영향을 받는 국가에 부정적인 사회적 및 경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정 상황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조치는 국제 연결이 거의 없고 대처능력이 제한된 환경에서 일시적으로 유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감염자 2/3 탐지되지 않아" = 이탈리아 사례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1월 30일 중국인 관광객 2명이 확진자로 드러나자 중국과의 모든 항공편을 차단했다. 당시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에서 이런 예방조치를 채택한 최초의 국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10일 발표에 의하면, 이탈리아는 확진자 9172명, 1일 확진자 1797명, 누적 사망자 463명을 기록했다. 전면적 항공편 차단이 별 효과가 없었던 셈이다.

한편 지난 2월 20일 영국 임페리얼대학 연구진들이 발표한 결과는 차단보다 감시체계 작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이들은 지난 1월 1일부터 2월 13일 사이에 중국을 여행한 25개국 여행객 439건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실제 보고된 확진자수를 가로축으로 하고, 우한지역 교통량으로 예측한 감염자수를 세로축으로 한 그래프를 만들었다.

질병감시체계가 잘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싱가포르를 기준으로 회색선을 그리고, 위쪽에는 예측보다 확진자가 적은 국가들이 있고, 아래에는 예측보다 많은 국가들이 있다. 만약 모든 국가들이 감염자를 전부 다 발견했다면 점들은 이 선 위에 놓여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점들이 회색 선 위쪽에 찍혀 있다.

아직 각국 정부들이 충분히 감염자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중국 본토에서 수출 된 COVID-19 사례의 약 2/3(63~73%)가 전 세계적으로 탐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언더스코어는 "일부 국가들에 확진자가 적은 건 중국을 잘 봉쇄했기 때문이 아니라, 감시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세계보건기구도 유행병을 평가할 때, 단순히 절대적인 환자 수보다는 감염 경로를 파악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감염자 수는 많지만, 대부분 그 경로가 파악되어 있기 때문에 WHO에서도 크게 우려하지 않고 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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