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곳곳서 만나는 세계 각국 문화

'무슬림마을'에서 '중앙아시아 거리'까지

2020-11-09 11:14:27 게재

서울에만 46만명 거주

#1. 직장인 김 모씨는 몇년 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다녀왔다. 그는 귀국 후에도 안나푸르나의 관문격인 나야풀의 한 식당에서 맛본 커리와 짜이(밀크티)가 자꾸 생각이 났다.

그런 김씨에게 회사 후배가 종로구 창신동의 한 네팔식당을 소개했다. 김씨는 이후 지인들과 창신동 네팔음식점을 찾곤 한다.

#2.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무역업을 하는 이 모씨는 중구 광희동을 자주 찾는다. 사업 파트너 사무실이 그곳에 있기도 했지만 단골인 우즈베키스탄 식당의 양고기빵과 러시아맥주가 가끔 생각나서다.

이씨의 단골식당이 있는 중앙아시아거리에 가면 한국말보다는 러시아말이 더 흔하게 들린다. 낯익은 서울의 골목인데도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져 묘한 느낌이 든다.


서울은 다양한 국적과 직업을 가진 외국인 주민들로 넘쳐나는 대표적인 국제도시다. 이들은 종교시설 학교 직장을 중심으로 특정지역에 많이 모여 산다. 외국인 이웃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고향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으로 고유한 특색들을 물씬 풍긴다.

이곳들을 거닐다보면 전통음식과 언어 그리고 현지 문자 간판들로 해외여행 중인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낯익은 중국과 필리핀은 물론 낯선 네팔과 몽골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서울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중구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의 랜드마크 격인 몽골타워의 입주업체 안내판. 사진 이의종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 = 을지로6가, 지하철 2·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인근 골목길을 사람들은 러시아·몽골 타운으로 부른다. 자치단체가 정한 공식명칭은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지만 러시아 골목, 러시아·몽골 골목, 동대문 실크로드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이곳에 이방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한국과 구소련이 수교를 한 1990년대 초부터다. 먼저 동대문시장에 물건을 사러 온 러시아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등 구소련의 영향권에 있었던 나라 상인들이 주인공이 됐다. 가게 간판은 낯선 키릴 문자로 적혀 있고 한국말 듣기가 더 어려운 골목마다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고 현지 식당 식료품점 잡화점으로 가득하다. '동대문 실크로드'로 소문나면서 한국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몽골타워'라고 불리는 10층짜리 건물은 이곳의 랜드마크다. 바깥에서 안쪽까지 몽골말로 가득한 이 건물 안에는 몽골 음식점 여행사 식료품점 물류대리점 등 몽골인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1층부터 10층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1976년 서울 이태원에 세워진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전경. 사진 이의종


◆이태원 무슬림마을 = 이태원은 오래 전부터 '한국 속 세계'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최근 용산구 이태원 주변에 형성되고 있는 무슬림(이슬람) 마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태원 남동쪽 끝자락에는 1976년 세워진 한국 최초의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이 있다.

사원을 중심으로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집트 등에서 건너온 무슬림들이 집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서울치고는 건물 임대료, 물가가 싸다는 소문이 나면서 젊은 예술인들의 유입도 많이 늘었다.

특히 이슬람 국가와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무슬림마을은 점점 더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원을 나와 이태원역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터키 이집트 파키스탄 등 이슬람계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주로 할랄음식점이 많다. 할랄푸드란 이슬람교도에게 허용되는 음식을 일컫는다. 요즘 할랄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한국인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창신동 네팔 마을 = 종로구 창신동에는 네팔인 거주지가 형성됐다. 봉제공장이 많은 창신동은 일자리를 찾아 외국인 이주자들이 모여들었다. 창신동 골목시장으로 들어서면 원조 커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늘어서 있다. 식당에서 파는 것은 대부분 비슷한데 다양한 종류의 커리, 난(화덕에서 구워내 커리에 찍어먹는 납작한 빵) 짜이 등을 판매한다.

가계를 장식한 네팔 공예품들과 네팔 전통 음악을 들으면서 커리를 먹으면 네팔 느낌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현지 음악이 흘러나오고 공예품이 장식돼 있는 음식점에서는 때때로 네팔인들의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 골목에는 네팔 향신료나 과자를 파는 잡화점도 들어서 있다.

◆서초구 서래마을 = 가장 많이 알려진 외국인 집단거주지는 서초구 서래마을이다. 서래마을이 파리 한 모퉁이처럼 이국적인 거리로 변모한 것은 1981년 이태원에 있던 서울프랑스학교(LFS)가 이전해 오면서다.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자연스럽게 서래마을을 찾게 된 것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절반가량이 여기에 모여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마을을 넘어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가리봉동·대림동 차이나타운 = 서울에 거주하는 중국 출신 외국인들은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 이곳에 있는 대림중앙시장은 초입부터 중국어로 쓰인 간판들이 즐비하다. 중국의 향이 강하게 나는 시장골목을 따라 현지 식료품과 음식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그 중에는 돼지 코, 오리 머리, 소 힘줄 등 익숙지 않은 것들도 많아 구경하는 맛이 난다. 식당에서는 훠궈나 마라탕, 만두 등 다양한 중국 요리를 파는데 한국 사람이 잘 모르는 음식도 찾아볼 수 있다. 상인이나 직원들은 대부분 중국인이나 조선족이며 중국어를 못하면 의사소통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도 중국말, 중국 간판과 중국 음식에 둘러싸여 걷다 보면 서울이 아닌 중국의 한 마을에 온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혜화동 필리핀 거리 = 매주 일요일 아침 종로구 혜화동성당 앞은 필리핀 출신 이주자 만남의 장소로 변한다. 이곳은 천주교 신자인 필리핀 출신들이 미사를 마치고 나와 고향 음식과 식재료, 생활용품 등을 사고팔고 안부를 전하며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마켓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린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갖가지 필리핀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고 한국에서 보기 힘든 필리핀 통조림 식료품 등이 다양하게 진열돼 있다.

인근 골목에는 필리핀 식당과 카페도 영업 중이다. 필리핀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과 다른 외국인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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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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