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위기 때 외톨이된 이들, 이제 40대 접어들어"

2021-08-06 13:06:29 게재

부모 은퇴 때까지 은둔 이어지면 삶의 질 동반하락

"일본처럼 중장년층 은둔형 외톨이 문제 대비할 때"

"나이가 많이 든 은둔형 외톨이들은 사회에서 자리를 못 잡았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오프라인에서는 물론 온라인에서도 자신을 숨기고 집 안에서 썩어가기만 합니다. 은둔형 외톨이를 벗어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방법도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고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기가 더 힘듭니다."

'8050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는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곧 '중장년층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전면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 때 취업 불황과 함께 좌절을 겪고 은둔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아직은도 집안에서 고립되어 있다면 이미 장년층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장년층은커녕 은둔형 외톨이 전체 규모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박대령 이아당심리상담센터장은 "일본에선 은둔형 외톨이와 그들의 부모가 같이 고령화되면서 자녀가 부모의 사망사실을 숨기고 연금을 지급받거나 최악의 경우 같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의 뉴스가 종종 나온다"며 "한국에선 은둔형 외톨이들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때가 IMF사태 이후로 보이는데 이들이 은둔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40대 은둔형 외톨이가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은둔형 외톨이의 고령화 문제가 제기되면서 '8050 리스크'(80대 부모가 50대 은둔형 외톨이 자녀와 함께 지내며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여러 갈등 때문에 극단적 상황에 이르는 등의 우려)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박 센터장은 "이른바 IMF세대가 국내에선 은둔형 외톨이 1세대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이 은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50대로 넘어가면 부모는 이미 은퇴 이후가 된다"면서 "일본에선 은둔형 외톨이의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우리도 이제 15년 정도 남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는 19~39세 연령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적외톨이지원연대' 준비모임(현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이 2019년에 국내 은둔형 외톨이 16개 지원기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는 19~39세 연령대가 가장 많다.

다만 은둔 기간이 장기화되는 경향은 은둔형 외톨이들의 고령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은둔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는 16~18세(39.8%)가 가장 많았는데 은둔 기간을 따져보면 5년 이상이 20.2%에 달했다.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보지만 대부분 상담을 받다가 고립 탈출까지 이르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은둔 시작 초기에 적절한 지원이 없으면 은둔 기간의 장기화로 이어지고 은둔형 외톨이들의 고령화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은둔 기간 장기화 외에도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날 수 있는 요인은 또 있다.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주변의 정서적 지지의 부족으로 중장년의 나이에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 활동가들에 따르면 사회관계망 측면에서 한국의 중장년층이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9년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낙심하거나 우울해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20대(89.3%)와 30대(88.9%)는 거의 90% 가까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40대(84.9%)와 50대(81.3%)로 가면 비율이 꺾인다. 40대는 10명 중 한 명 이상이, 50대는 10명 중 2명 정도는 적절하게 정서적 도움을 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이야기다.

은둔형 외톨이의 은둔 기간 장기화 및 고령화 리스크는 높아지고 있지만 사회적 지원은 상대적으로 어린 층에 쏠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한 서울시의 경우 지원대상을 만 19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을 모집 대상으로 정했다. 프로그램 제목도 '은둔 청년 프로그램'이다.

공동생활을 하며 관계회복을 지원하는 지원단체 K2인터내셔널 코리아의 공동생활 지원 조건도 만 19세부터 만39세까지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지원 자체도 드물지만 40대 이상에 대한 지원은 더 드문 셈이다.

고령화된 은둔형 외톨이가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면 여러 문제가 파생될 수 있다. 박 센터장은 "부모들이 은퇴해서도 자식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부모와 자식이 함께 경제적으로 빈곤해진다"면서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면 부모와 은둔형 외톨이 간의 정서적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고, 극단적선택 등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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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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