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국가 방치

짓밟는 경쟁·권위주의가 '세상과 차단' 만든다

2021-08-06 15:12:37 게재

전국 최소 13만5000명 추정 … 정부 부처 지원체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어

고성장시대에 청소년·청년기를 보낸 중년세대와 달리 요즈음 우리나라 청소년·청년들은 극심한 학업 취직 경쟁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있다. 자퇴와 퇴학, 구직 단념, 높은 우울감, 극단적 선택 등 수많은 사례와 지표들은 우리나라 청소년·청년들이 사회와 거리를 두거나 등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의 자존감과 인격을 짓밟는 환경,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사회 관계 속에서 깊게 상처받고 세상을 차단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청소년·청년도 많다.

하지만 최소 13만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 지지제도는 전무하다. 은둔형 외톨이와 가족들은 고군분투 중이다. 소수의 활동가·단체가 이들을 위한 지지활동을,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지원 지지활동을 모색하는 수준이다. 은둔형 청소년·청년들의 실태를 들여다보고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 지지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대안을 모색한다.


#. K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맞벌이 부모와 살았다. 금전적으로는 괜찮았지만 돌봄 없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많은 시간을 게임을 하며 보냈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언행에 불안감 속에 자랐다. 게임 중독이 됐고 정신건강학과 상담까지 받았다. 학교에 가기 싫어져 중2 때 자퇴했다. 10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다. 보호입원 조치를 받고 강제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K씨는 이후 의사와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으로 일상-직장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K씨는 은둔생활을 하는 청소년 청년들에게 "피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또 사회에 대해서는 "저출산시대에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방치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라며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B씨는 간헐적으로 8년간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했다. 아버지의 음주·폭행으로 가정불화가 이어져 씻지 못하고 학교를 가는 경우도 있었다. 무단결석이 이어지면서 부모와 갈등이 심해지고 결국 고등학생 2학년 때 자퇴를 했다. 대학을 가면서 일시적으로 세상으로 나갔지만 다시 자퇴하고 방안에 머물게 됐다. 가정불화로 아버지와 다투면서 자해를 하고 생명의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B씨는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청소년·청년에게 "은둔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잠시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라"고 권했다. 또 "지방에도 서울처럼 은둔형 외톨이에게 도움을 주는 단체나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씨는 "획일적인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한번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이들처럼 은둔 고립생활을 하면서 살아있지만 전혀 행복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는 청소년 청년들이 적어도 13만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청년 사회경제실태조사 결과 19세∼39세 가운데 은둔형 외톨이 비율은 0.9% 정도로 약 13만5000명으로 추산됐다. 청소년에 대한 조사가 없으니 이 수치는 '최소한'으로 추정된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배타적 경쟁과 권위주의가 만연한 학교 직장 조직문화가 있다.

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소수를 위한 입시 경쟁 속에서 매우 높은 학업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다"며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고통을 회피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집밖 생활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고 설명했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청소년 시기뿐만 아니라 대학 입학 이후 사회 초년생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은둔형 외톨이가 발생한다. 개인의 다양한 삶의 선택지를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인 학교 직장 평가체계 속에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는 반발의 표현이다.

문제는 청소년과 청년시절에 산업화·고성장시대를 살아온 50·60대들은 2020년대 청소년·청년들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물론 교육·경제정책 전문가들도 이들이 보여주는 '고통스런 호소'를 '일시적이고 흔한 사례'로 치부한다.

김 센터장은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전국적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청소년·청년과 관련된 많은 생활·건강지표들을 보면 은둔형 외톨이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사회환경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자퇴·구직단념·우울감 강요하는 사회 = 여성가족부 학교밖청소년지원과에 따르면 2020년 한해 동안 발생한 학교밖청소년은 질병(1521명)이나 해외출국자(2만2607명)를 제외하고 2만8000여명으로 나타났다. 3개월 이상 학교를 가지 않거나 제적 퇴학 자퇴를 한 경우이다.

학령기(9세∼18세) 연령대 학교밖청소년은 모두 23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0년 제적·퇴학·자퇴한 고등학생은 2만3811명이다. 최근 3년간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로 확인된 관심군 현황은 중학생 2만8710명, 고등학생 2만4345명으로 나타났다.

사회에서는 이들에게 '부적응'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들 중에는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상처를 받고 교육현장을 떠난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한 보호활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구직단념자 인구가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엔 6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2020년 구직단념자 68만2000명 중 20대 비중이 36.6%(24만9000명)를 차지한다. 30대까지 범위를 넓히면 구직단념자의 비율은 52.6%로 늘어난다.

통상적인 사회진입 이행경로를 벗어난 이른바 '저활력' 청년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일할 능력이 있지만 근로를 하지 않은 이른바 '쉬었음' 인구를 조사한 결과 2019년 4분기 이후 20대는 1년 만에 9만3000명, 30대에선 5만명이 증가했다.

이들 청년세대의 정신건강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최근 발표한 보건복지부의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20대, 30대가 우울 평균점수와 우울 위험군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대, 30대 우울 위험군 비율은 각각 24.3%, 22.6%로, 50대 60대(각각 13.5%)에 비해 1.5배 이상 높다. 극단적선택 생각 비율도 20대와 30대가 17.5%, 14.7%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았다. 50대는 9.3%, 60대는 8.2%로 나타났다.

◆세상과 차단한 사람들, 공감이해 달라야 =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현재 사회적으로 합의된 개념과 기준은 없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활동가들과 학계 등에서 연구해온 결과를 종합해보면 은둔형 외톨이들은 자신의 방에서 은둔하고 있고 그 기간이 3개월에서 6월 이상 된 자를 말한다.

이들은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으며, 방에서 나가더라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필수적으로 생활필수품을 얻기 위한 제한적 활동을 한다. 혼자 하는 취미활동, 최소한의 가족 모임이나 치유·치료활동을 위해 자조모임 등을 할 때만 외출한다.

대외적으로는 친구가 한명이거나 전혀 없으며, 집 안에서 생산적인 활동을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은둔 상태에서 발생하는 무력감 때문에 불안·초조함을 나타내며 가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애초 지적장애 우울증 대인공포 조현병 등 질환으로 인해 은둔생활을 시작한 경우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들은 사회적 관계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공적서비스처럼 단순히 대면-프로그램 참여 방식으로 접근하면 실패하기 일쑤다.

K2인터내셔널코리아 오오쿠사 미노루 슈퍼바이저는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와 사회적 고립 청년은 당사자나 가족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아직 전문적인 지원체계가 거의 없다"며 "사회 전체가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서로 도와주는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지원제도 갖춘 정부 부처 없어 = 정부 어느 부처도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지원제도를 갖추지 않고 있다.

청소년 주무처인 여가부에는 학교밖청소년 지원제도가 있어 청소년이 자퇴 퇴학 등을 할 경우 지역에서 상담복지 지원을 한다. 하지만 고등학생 연령층인 경우 지원을 신청하지 않으면 뽀족한 수가 없다.

교육부는 학교안 청소년만 챙기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청소년에 대해 지역사회 정신복지건강센터를 통해 정신건강진료 돌봄을 지원하고 있지만 집안에 머물고 있는 경우 아무런 지원사업이 없다.

청년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조정실에도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관리제도가 없다. 국무조정실 청년정책과장은 "은둔형외톨이에 대한 국가적 지원제도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상희 국회 부의장(더불어민주당·부천소사)은 "청소년·청년세대의 행복한 삶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책무이며 저출생고령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직업문화가 존중·확산되어야 한다"며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공적 지원·지지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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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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