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착륙·생태계 조성·구조개혁 삼박자 맞아야

2021-08-19 11:02:26 게재

에너지전환 성공을 위한 제언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권에 지나치게 휘둘려왔다는 점이다. 이중 원자력발전(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에너지믹스는 진영논리가 더 거셌다.

2000년대는 원전 르네상스 시대였다. 그러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원전은 급격히 위축됐고, 2010년대 중후반부터 탈원전 주장이 대세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탄소중립 실현과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로 지칭되는 에너지전환을 성공하려면 다음의 3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독일·프랑스 사례는 우리와 달라 = 첫째, 에너지전환은 급격한 변화가 아닌, 점진적인 추진방식이 요구된다.

대다수 국가·기관·단체·사람들은 탄소중립과 친환경에너지 보급 확대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추진방법과 속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단기간에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해 공급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의 전력다소비 경제구조다. 4차산업혁명 가속화와 국민소득 증가에 따른 전력소비 증가를 인위적으로 억제하기 어렵다.

또 석유·가스·유연탄 등 화석연료는 매장량이 거의 전무하고, 태양광(햇빛)·풍력(바람) 등 재생에너지 부존여건도 좋은 편이 아니다.

유럽이나 북미처럼 다른 국가와 육지로 연결돼 있지 않아 전력계통도 고립돼 있다. 지정학적 위기나 자연재해, 계통 불안 등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장담할 수 없다.

원전 강국 프랑스, 재생에너지 모범국가 독일 사례를 참조 하되 그들의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인접국가들와 전력을 수출·수입해가며 수급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데다, 한쪽은 북한에 막혀 전력계통에 있어서 만큼은 고립된 섬과 같다.

따라서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려면 전력수요는 어떤 방법으로 감축(과도한 에너지 전력화 방지)해 나갈 것인지, 재생에너지 간헐성 한계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원전과 재생에너지 균형은 어떻게 유지하고, 그 틈새를 채울 에너지는 무엇인지 등 대안을 모색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고, 안정적인 대규모 공급이 가능하며, 분산형 전원으로 육성할 수 있는 천연가스 발전은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비싼 원가는 다른 에너지원과 세제 형평을 맞추면 격차가 줄어든다. 원전과 같은 폐기물이 없고, 재생에너지 한계인 간헐성도 없다.

원전은 부지정지부터 상업운전에 이르기까지 7~12년 소요된다. 또 일반적으로 원전은 1시간에 3%씩 출력이 올라가기 때문에 한번 세웠다가 다시 가동하려면 33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원전은 단기적인 수요변화에 즉각 대처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설비는 공사기간이 약 3년 소요되고, 중단 후 1~3시간이면 재가동 할 수 있다.

◆소재부품, 특정국가 의존 지나치면 안돼 = 둘째, 전원믹스는 발전산업 생태계 조성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

태양광산업 생태계는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태양전지)→모듈(패널) 순으로 구성된다. 국내 태양광시장에서 국산모듈 점유율은 80%에 육박하지만 국내 셀 제조업체들이 쓰는 잉곳·웨이퍼는 95% 이상이 중국산이다.

풍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차단기와 전장품, 타워, 블라이드의 국산화율이 각각 10%, 타워 14%, 26%에 불과하다.

대다수 핵심소재·장비를 독일 등 선진국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2년전 일본의 반도체용 핵심소재 수출규제로 국내 반도체업계가 뒤통수를 맞았던 일은 참조할 만한 사례다.

태양광업계 한 관계자는 "밸류체인 중 한부문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며 "국제사회에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어 국가간 분업화에 전적으로 의존해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소재부품을 100% 국산화할 필요까진 없고, 그게 가능하지도 않지만 특정 국가나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어선 안된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전원믹스 변화는 핵심소재·장비 등 발전산업의 생태계 구성을 살펴보고, 기술혁신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요관리 최대 효과는 요금체계 변화 = 셋째, 전력산업의 구조변화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 진영논리에 기초한 탈원전, 친원전 주장은 양측을 극단적으로 몰아간다.

친원전주의자들은 원전을 축소하면 당장 전국적인 대규모 정전(블랙아웃)과 전기요금 인상으로 서민의 삶이 어려워질 것처럼 왜곡한다.

반면 탈원전주의자들의 경우 원전은 사고위험이 크며, 사고발생시 고농도 방사능 유출 등으로 인류에게 치명적이라고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대립이 커지니 정작 지구온난화 주범인 화석연료 발전은 사람들의 관심을 피해가고 있다"며 "지금은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가 싸울때가 아니다. 둘이 힘을 합쳐 화석에너지 사용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소중립과 전력수급 안정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친원전, 탈원전만 이분법으로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균형있는 에너지믹스와 함께 수요 위주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다.

수요관리는 전력설비 공급망과 달리 단기간내 조정 가능하기 때문에 수급안정에 효과적이다. 수요관리의 최대효과를 보려면 요금체계 변화가 필요하다. 에너지 세제와 전기요금 개편이다. 각 요금체계에 부여해온 특혜를 없애고, 원가에 충실하게 조정돼야 한다.

전력시장의 구조개편도 해결과제다. 이를 통해 적정한 에너지믹스, 에너지전환의 연착륙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석유와 가스에는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원전에는 세제 혜택을 제공해왔다.

우리가 추진해야할 방향은 경제성과 환경성이 조화를 이루는 에너지전환이다. 에너지원별 발전비용에 사회적 비용을 공정하게 반영하고, 원가에 기초에 가격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이를 통해 수요 감축을 유도해야 한다.

또 전력은 지방에서 생산하고, 소비는 수백킬로미터 송전선을 따라 수도권에서 하는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지역에서 소비할 전력은 각 지역에서 생산하는 분산형 발전을 대폭 확대하고, 불가피할 경우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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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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