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노동자 건강실태

배달·대리운전 노동자 81% "건강검진 안 받아"

2021-10-12 11:52:54 게재

한국노총 '플랫폼이동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 "야간노동 범위, 특수건강검진 대상 확대해야"

플랫폼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최근 디지털경제로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대유행은 비대면 거래를 증폭시켰다. 플랫폼노동의 영역도 점차 다양화되고 플랫폼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 역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플랫폼 노동자 보호에 대한 논의는 특수형태고용 종사자(특고)라는 지위를 중심으로 노동자성 인정 여부 등 고용에 집중된 측면이 있다.
지난 5일 발표한 한국노총 '플랫폼이동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를 통해 플랫폼 노동자의 건강실태를 살펴보고 노동환경 개선과 건강증진 방안을 모색한다.

배달 라이더 숨진 사고현장에 추모 행렬│8월 27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도로에 전날 사망한 오토바이 배달원을 추모하는 국화꽃 등이 놓여져 있다. 오토바이 배달원은 전날 오전 신호를 기다리다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배달의 민족은 조의금 형식으로 1000만원 일시 지급을 통보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장례비용을 지급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플랫폼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 배달·대리운전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야간노동과 진동, 고정된 자세 등으로 인해 근골격계 호흡기계 소화기계 통증을 경험하고 있었다. 고객의 폭언 욕설과 '별점평가'로 정신건강도 취약했다.

그러나 플랫폼 이동 노동자가 건강검진을 받은 경험은 20%도 안됐다. 플랫폼 이동 노동자들이 건강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플랫폼이동 노동자 건강권 실태와 개선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과 윤진하 연세대 예방의학교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이상국 총괄본부장, 조현진 기획팀장이 함께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음식배달노동자 250명, 대리운전노동자 250명 등 지역기반형 플랫폼이동 노동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조사는 노동환경, 신체건강, 정신건강 및 사회적 관계, 사고발생 및 작업환경 등 총 4개 영역에 걸쳐 이뤄졌다. 조사는 지난 6월 설문과 대면 조사방식으로 진행됐다.

◆평균 1.6개 플랫폼업체 이용 = 조사대상 플랫폼이동 노동자의 97.4%는 남성이었고 여성은 2.6%에 그쳐 남성중심 업종임을 알 수 있었다.

평균연령은 41.2세였다. 음식배달 노동자는 35.8세로 청년세대, 대리운전 노동자는 46.7세로 중장년세대였다.

플랫폼이동 노동자들은 평균 1.6개의 플랫폼업체를 이용했다. 음식배달 노동자는 1.1개, 대리운전 노동자는 2.1개였다. 특히 음식배달 노동자의 96.0%는 1개를, 대리운전 노동자 69.6%가 2개 이하 플랫폼을 이용했다.

플랫폼이동 노동자의 88.4%는 서비스 제공 가격결정을 플랫폼업체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고 응답했다. 본인과 플랫폼업체가 협의해 결정한다는 응답은 11.4%에 그쳐 플랫폼업체에 강한 사용종속관계를 보였다.

플랫폼이동 노동자의 66.2%는 플랫폼업체의 '지사·지부'를 사용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본사와 지사·지부 둘 다'라는 응답은 22.0%, '본사'는 11.6%였다.

장 연구위원은 "플랫폼 이동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책임에 있어서 플랫폼업체 본사뿐만 아니라 지사·지부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당 평균 54.1시간 일해, 임금노동자보다 14시간 많아 = 플랫폼이동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4.1시간이었다. 음식배달 노동자는 58.5시간, 대리운전 노동자는 49.6시간으로 나타났다. 2019년 기준 임금노동자 주당 평균 노동시간(40.7시간)보다 약 14시간 더 오래 일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간대는 음식배달 노동자는 오후 1시에 시작해 밤 11시까지, 대리운전 노동자는 오후 6시에 시작해 새벽 3시까지로 조사됐다. 야간에 하는 노동이 많았다.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플랫폼이동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야간노동 정의에 포함되지 않아 '특수건강검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야간노동의 범위 및 특수건강검진의 대상 확대 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플랫폼이동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일수는 두 업종 모두 5.8일이었다. 음식배달 노동자는 주당 284.6건의 배달을 했고, 대리운전 노동자는 30.2건을 수행했다. 1건당 소요시간은 대리운전 노동자는 1시간 18분, 음식배달 노동자는 10분이었다. 교통사고 등 안전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1년간 교통사고 경험 10.4% = 특히 음식배달 노동자의 건강장애요인 노출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출 정도는 △노출안됨(1점) △일하는 시간의 1/4(2점) △일하는 시간의 절반(3점) △일하는 시간의 3/4(4점) △일하는 내내(5점)으로 측정했다.

△진동이나 고정된 자세 및 반복적인 작업(3.2점) △목청을 높여야 할 정도의 심한 소음(2.1점) △심각한 매연과 먼지 흡입(3.4점) △활동하기 어려운 수준의 높거나 낮은 온도(3.1점) △운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미끄러운 바닥(2.6점)이 주요 건강장해 요인으로 꼽혔다.

플랫폼이동 노동자의 최근 1년간 운행 중 접촉사고를 포함한 교통사고 경험은 10.4%에 달했다.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음식배달 노동자는 14.0%였다. 대리운전 노동자들도 6.8%가 사고를 경험했다.

플랫폼이동 노동자들은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더 많은 수입을 얻기 위해 시간에 쫓겨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급여나 수입에 대한 만족도는 낮았고 스스로 사회적으로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최근 1년간 근골격계 및 호흡기계, 소화기계 통증을 경험한 비중은 17.2%였다. 실제 운행시간이 주 52시간을 넘는 사람은 해당 비중이 25.7%로 더 높았다.

◆신체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도 취약 = 고객과의 대면이 잦은 특성에 따라 신체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도 취약했다.

플랫폼이동 노동자 중 60.8%는 고객으로부터 폭언이나 욕설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대리운전 노동자의 경우 '최근 1년간 고객으로부터 폭언·욕설을 경험했다'는 답변이 82.4%나 됐다.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평가받는 '별점'이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었다. 플랫폼이동 노동자 중 41.4%는 고객 평점·별점·후기 등으로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배달 노동자는 35.6%, 대리운전 노동자는 47.2%가 불이익이 있다고 답했다. 66.2%(매우+조금 느낌)는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

플랫폼이동 노동자의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이 취약함에도 건강검진을 받은 비중은 19.0%에 그쳤다. 81.0%는 건강검진 경험이 아예 없었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의 검진비율은 2017년 78.6%, 2018년 76.9%, 2019년 74.1%를 기록했고 코로나19로 떨어졌지만 2020년 67.5%다.

플랫폼이동 노동자 93.3%는 지역가입자 형태로 건강보험에 가입해 있었다. 1.2%가 직장가입자였고, 5.6%는 '미가입 또는 피부양자'였다.

건강보험 가입자 자격으로 2년에 한번 일반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지만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실제 건강검진을 받는 비중은 매우 낮았다.

◆건강검진 필요성 못 느낀다 38.3% =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응답자 중 38.3%가 '건강검진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를 꼽았다. 이어 '언제 어디서 건강검진을 받는지 몰라서'(20.7%), '건강검진을 받은 동안 일할 수 없어서'(11.1%) 등의 순으로 답했다.

장 연구위원은 "건강검진의 필요성과 방법 등에 대한 홍보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플랫폼이동 노동자의 감정노동 강도는 대리운전 노동자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선별도구를 통해 측정한 우울감 조사에서 노동자 10명 중 1명(11.2%)이 가벼운 우울증상을 보였다.

지난해 산안법 개정으로 올해 7월부터 특수형태근로 종사자도 안전보건교육 대상이 됐다. 이번 실태조사는 개정 산안법 시행 이전에 이뤄졌지만 플랫폼이동 노동자의 50.8%만이 안전보건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교육이 있었으나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32.4%에 달했다. 교육의 필요성이 떨어지거나 교육 참여에 따른 경제적 손실로 인해 불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노총은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노동자공제회' 차원의 정책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제회는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상호부조 방식의 조직이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건강보험 가입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건강검진 외에 플랫폼이동 노동자가 근골격계·호흡기계 질환을 검진할 수 있도록 공제회가 예산을 지원하고, 이동식 건강검진센터나 거점형 의료기관을 지정·운영해 검진받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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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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