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를 떠난 하청노동자 돌아올까 … "일 없다"

2022-10-25 10:48:48 게재

탈탄소·친환경 흐름에 대응해 새롭게 열리는 선박시장도 중국을 제치고 세계1위 초격차를 이어가려면 품질과 납기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숙련된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2016년 조선업 불황을 겪으면서 조선업 노동자는 2015년 최고점 대비 20만3000명에서 지난해 9만3000명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이 가운데 용접·도장·비계 등 직접 생산인력은 5만1000명이고 원청·하청 비율은 2:8(1만1000명 : 4만명)이다. 숙련 하청노동자들이 조선소 생산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4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말에는 1만여명이 부족하고 2027년까지 4만3000여명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해외 수주가 늘고 선가(뱃값)가 인상되면서 조선시장은 회복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희망을 잃고 조선소를 떠난 숙련 하청노동자들이 돌아올 수 있을까.

"조선시장이 회복되고 있다지만 조선소 임금과 안전한 작업환경이 얼마나 바뀔지, 바뀔 수나 있는지 불확실하다."

50대 초반인 박 모씨는 파워그라인더(도장)로 2002년 2월부터 울산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로 일했다. 박씨는 조선업 불황기에 접어든 2016년에는 그래도 견딜 만했다. 당시 일당이 17만~18만원이었다. 한달 만근하면 480여만원을 벌었다. 시운전 중인 배에서 도장하면 특별수당도 받아 650만원까지도 벌었다.

하지만 2018년부터 일감이 줄면서 잔업도 없고 쉬는 날이 많아졌다. 월급이 280만원으로 줄었다. 게다가 복지도 나빠졌다. 밥값도 1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리고 작업복도 1년에 1벌 주던 것을 사야 했다. 보안경 맞추는 것도 1년에 두번에서 한번으로 줄었다.

박씨는 "대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벅찼다"면서 "2020년 2월, 15년 이상을 다닌 조선소를 떠나 울산 석유화학단지 유화플랜트로 옮겼다"고 했다.

그는 플랜트에서 일당 19만원을 받는다. 월 15~16일 일하고도 480만원 이상을 번다. 다른 사람들은 600만원을 번다. 조선소에서는 잔업을 하면 시간당 2만원을 줬는데 플랜트에서는 2시간만 일하면 반공수(반일치)를 준다. 2시간 일하고 9만5000원을 추가로 받는 셈이다.

작업도 안전하다고 했다. 박씨는 "조선소에서는 높은 곳에서 도장을 하다 떨어져 골반뼈 갈비뼈 등을 다친 동료들도 종종 봤다"면서 "플랜트에서는 안전을 중시한다. 예를 들어 안전벨트가 조선소에서는 1개 인 반면 플랜트는 2개를 기본으로 한다"고 말했다.

"조선소가 최고인 줄 알았다. 다른 곳도 다 힘든 줄 알았다. 플랜트에 오자마자 충격을 받았다."

30대 후반인 정 모씨는 대우조선해양에서 하청노동자로 2008년 11월부터 의장팀(배관) 일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올해 7월부터 경기 평택 삼성전자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조선소에서 2014년에는 성과금 상여금을 포함해 연봉 4000만~5000만원을 벌었다. 2014년부터는 성과금이 줄다 없어지고 매월 주던 상여금도 기본급에 포함됐다. 2016년부터는 일감도 줄었다. 아픈 아이가 있어서 빚만 늘었다.

정씨는 15년 일했는데 최저 시급 정도인 9650원을 받았다. 막 들어온 후배동료들과 비슷했다. 숙련공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그만둘 때 연봉은 3200만원이었다.

평택 플랜트에서는 일당 16만원에 연봉 4500만원을 받는다. 일감도 많다. 잔업을 하면 월 600만원까지 벌기도 한다.

정씨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플랜트 일이 앞으로 7년 이상 있다고 들었다"면서 "조선소에서 버티려고 했는데 15년 일한 동료들을 떠나 먼 평택까지 왔다"고 말했다.

정씨가 다니는 회사 150명 중에 대우조선해양 출신이 10명이나 된다. 삼성중공업 등을 포함하면 조선소 출신은 더 많다고 한다.

정씨는 "조선소에서는 한 작업장에서 용접 도장 의장 일들이 혼재돼 일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허용이 안된다"고 말했다.

박씨와 정씨는 조선시장이 나아지고 있는데 돌아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잘라말했다. 또한 정부가 조선업 원·하청 이중구조 개선 대책을 마련 중인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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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정연근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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