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물가도 심상찮다 … 오름세 탄 국제유가 최대변수

2023-09-06 11:11:49 게재

8월에만 물가 3.4% 올라 … 추석성수기 물가 '빨간불'

가공식품·설탕도 인상조짐 … 정부는 "10월부터 안정"

정부가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던 하반기 물가 흐름이 심상찮다. 8월 소비자물가는 폭염·폭우 영향으로 4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2%대로 안정세를 보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3%대로 뛰었다. 9월도 만만찮다. 추석 성수기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0월부터는 다시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기대에 그칠 수도 있다. 소비자물가 전반에 영향을 주는 국제유가 오름세가 여전한 탓이다. 산유국들의 본격적 감산이 3개월째 이어진 영향이다. 국제 밀가격을 좌우하는 흑해곡물협정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식료품과 주요 먹거리 가격도 덩달아 뛸 조짐이다.

◆한달 만에 1.1% 올라 = 6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년동월대비 물가상승률은 7월 2.3%에서 8월 3.4%로 한 달 사이 1.1%p 뛰었다. 월간 대비로 따지면 23년 만에 최대 폭 상승이다. 2000년 9월 물가상승률(3.5%)이 같은 해 8월(2.4%)보다 1.1%p 오른 적이 있다. 정부는 10월 이후엔 다시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전날 열린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국제 유가 등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지만 전반적인 물가 둔화 흐름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일시적 요인들이 완화되면서 10월 이후부터는 물가가 다시 안정화될 것"이라고 점쳤다.

물가가 다시 뛴 배경으로는 국제유와 이상기후를 지목했다. 김 차관은 "7월 중순부터 큰 폭으로 상승한 국제유가가 시차를 두고 국내에 반영됐다"며 "호우·폭염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 등 일시적 요인이 더해지면서 8월 물가가 상승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은행도 '예상치보다 높은 상승세'라고 판단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8월 경제전망 당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지만 최근 석유류·농산물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상승폭이 다소 커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석유류·농산물 가격 영향 = 정부 분석을 종합하면 8월 물가상승률 확대의 원인은 대부분 석유류·농산물 가격 변화다. 지난 7월 물가상승률이 2.3%로 둔화한 것도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석유류 가격 급락(-25.9%) 영향이 컸다. 그러나 한달 뒤 국제유가가 배럴당 평균 86.6달러(두바이유 기준)로 오르면서 같은 달 석유류 가격 하락폭이 11%로 줄었다.

농산물 가격 역시 영향을 줬다. 폭염·집중호우 영향으로 8월 농산물 가격은 5.4% 올라 전체 물가를 0.26%p 끌어올렸다. 주요 품목별로 가격 등락을 살펴보면 △사과(30.5%) △수박(18.6%) △복숭아(23.8%) △고구마(22.0%) 등이 전년동월비 많이 올랐다.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전기료(25%) △도시가스(21.4%) △지역난방비(33.4%) 등의 가격도 올랐다.

IMF 연례협의 대표단 면담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IMF 연례협의 대표단과 화상으로 면담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와 한은은 이달에도 물가상승률이 3%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유가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고 추석을 앞두고 성수품 수요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추석 성수기에 수요가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8~9월에는 물가상승률이 3% 초반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10월부터는 물가상승률이 다시 2%대로 내려올 것으로 내다봤다. 전반적인 물가상승률 둔화 흐름은 계속되고 있으며 8~9월 물가를 자극한 '일시적 요인'이 10월부턴 완화할 것이란 전망에 따른 것이다.

◆산유국, 연말까지 감산 통보 = 문제는 국제유가다. 국제유가가 최근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국제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갈수록 기저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750.20원으로 1750원대를 돌파했다. 경유 가격도 리터당 1640.58원으로 오름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특히 전날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하루 100만배럴의 자발적 감산을 연말까지 연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초 사우디는 10월까지 감산을 연장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를 연장했다. 세계 두 번째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도 사우디를 추종해 감산을 연말까지 연장키로 했다. 주요 산유국이 감산을 연장함에 따라 이날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하며 10개월래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 6월 배럴당 평균 75달러였던 국제유는 8월 다섯째 주 기준 86.7달러에 달했다. 6일 기준 국제유가는 90.80달러까지 올랐다.

◆국제식량가격도 꿈틀 = 식료품 물가 역시 인상요인이 더 크다. 집중호우와 폭염, 태풍 등 기상여건이 악화되면서 채소와 과일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이 치솟은 때문이다. 여기에 흑해곡물협정 중단, 일부 국가의 식량 수출 제한 등 식료품 물가 상승 요인이 산재해 있다. 우리나라는 곡물의 대외의존도가 높아 국제식량가격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에 따라 국내 가공식품 가격도 꿈틀대고 있다. 우유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낙농진흥회는 지난달 올해 원유(우유의 원재료) 가격을 리터당 88원 오른 1084원으로 결정했다. 2013년 이후 10년 만의 가장 큰 인상폭이다. 이에 따라 하반기 원유를 주재료로 하는 식료품 가격도 줄줄이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설탕도 세계 최대 생산국인 인도가 가뭄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다음달부터 수출을 금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 사탕수수 주요 재배지인 인도와 브라질 등지의 가뭄이 이어지면서 설탕 가격은 이미 상승세다. 과자와 빵, 아이스크림 등 설탕을 원료로 하는 제품 가격이 덩달아 오를 수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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