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평기금으로 세수펑크 땜질 방침 … 괜찮을까

2023-09-07 10:59:18 게재

10조원대 불용예산+작년 남은 예산 6조원+외평기금 20조원 등 활용

"유례 없는 세수부족사태 해소 위한 불가피한 대책, 부작용 최소화"

기금 활용위해 21년 만에 외평채 발행 채비, '눈가리고 아웅' 지적도

외평기금은 환율시장 조율 실탄, 환율시장 급변하면 신속대응 난망

올해 세수결손 규모가 30조~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50조원을 웃돌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정부는 이 부족분을 △세계잉여금 △예산 불용액 △기금 전용 등을 통해 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서 20조원 안팎을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내년에는 21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환평형기금 채권도 발행한다.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대규모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부작용 우려도 없지 않다. 외평기금은 환율시장 조율 목적에 한정된 자금이다. 정부 환율대응 여력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내년 환율시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전망이고 누적된 외평기금이 많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시장은 늘 예측대로만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란 비판도 있다. 외평기금을 세수결손에 쓰기 위해 21년 만에 처음으로 외평채권을 발행한다. 외평채 역시 '나라 빚'이다.

정부는 다음주 중 올해 세수를 다시 추계해 발표한다. 이때 부족한 세수 부족분을 메울 수 있는 구체적 방안도 함께 발표한다.

◆세수결손 해소 3가지 방안 =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7월까지 누적 국세수입은 217조6000억원으로 전년보다 43조3000억원, 16.6% 감소했다. 기재부 안팎에서는 올해 세수결손 규모가 30조~50조원 가량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는 국채 발행이나 추경 편성을 하지 않고 세수결손을 해결하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구체적인 방안은 내주 기재부가 발표할 '세수재추계와 결손 해소방안'에 담길 예정이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부족한 세금을 메꾸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정도다. 편성한 예산을 쓰지 않거나(불용) 지난해 쓰고 남은 돈을 쓰거나(세계잉여금) 공공자금지원기금(공자기금) 재원을 쓰는 방법이 있다.

통상 매년 10조원 안팎의 예산 불용액이 발생한다. 여기에 올해 기재부가 예산 불용을 '적극 방조'한 점을 고려하면 예년의 불용액을 조금 웃돌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세계잉여금 규모는 6조원 규모다. 다만 지난해 잉여금 6조원 가운데 출연·상환 등을 제외한 순수한 여윳돈은 2조8000억원이다. 자유로운 활용에 제한이 있는 특별회계 잉여금 3조1000억원까지 최대한 활용한다면 5조9000억원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세수결손규모를 40조원으로 잡으면 그래도 24조원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조원 안팎의 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1년 만에 외평채 발행 = 현행 법령에 따르면 올해 공자기금 정부내부지출 153조4000억원의 최대 20%인 약 30조원까지는 국회 의결 없이 행정부 재량으로 일반회계에 투입할 수 있다. 빚을 내지 않고 세수 부족을 메우겠다고 강조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숨겨둔 방안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다른 기금에 빌려준 예탁금을 대규모 조기 상환받는 방식으로 공자기금 여유재원 확보가 가능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추경예산안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외평기금의 공자기금 신규 예탁을 줄이는 방식으로 2조8000억원을 조달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을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20조원 안팎의 외평기금을 공자기금에 갚고, 이 자금으로 재정지출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환율대응 문제 없을까 = 외평기금은 환율 등락에 대비해 외화와 원화를 기금 형태로 쌓아둔 것이다.

환율이 오르면 기금 내 외화를 팔고 원화를 사고, 환율이 내리면 원화를 팔고 외화를 사는 식으로 환율을 유지한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원화가 많이 모여 있고 내년에는 원화 강세로 갈 가능성이 크지 않아 외평기금을 일부 쓰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환율 급등기에 달러를 내다 팔면서 외평기금에 이례적으로 원화가 많이 쌓여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 외환시장이 급변할 경우 원화 부족으로 적시 대응이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구체적으로 환율이 급락(원화강세)할 때 달러를 매수해 환율을 진정시킬 원화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최근 원화표시 저금리 외평채 18조원 가량을 발행했기 때문에 환율 하락에 대응한 시장 개입 원화 재원은 충분하다"며 "외평기금 재원을 쓰는 것은 하나의 카드일뿐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외평채도 결국 나라 빚" = 하지만 정부는 이미 '외평기금→공자기금→일반회계 재정'순으로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 둔 상태다.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기금운용계획안을 보면, 정부는 내년도 원화 외평채 발행 한도를 18조원으로 제시했다. 외평기금으로 세수부족분을 메우되, 환율조율에 사용될 재원이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둔 셈이다.

외평기금은 2003년 이후 원화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공자기금에서 돈을 빌려 운용해왔다. 국고채 시장 조성을 위해 외평기금이 직접 원화채를 발행하지 않았다. 내년 원화 외평채를 발행하게 되면 21년 만에 처음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국채를 덜 발행하고 기금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내년에 외평채를 발행한다면 이 것 역시 '나라 빚'이다. 국채와 비슷한 수준의 이자비용도 발생하고 채권시장 교란도 불가피하다. '웃돌 빼서 아랫돌 괴기'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정부는 국채 발행 등의 방식보다는 이자비용이 적고 국가신인도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평기금이 원화 외평채를 직접 발행할 경우 만기 1~2년,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이자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공자기금으로부터 빌리는 자금은 대부분 만기 10년 안팎의 장기채권이어서 이자 비용이 비싸 재정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방교부금 지연집행도 거론 = 세수결손 규모가 50조원을 넘어설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에 지급할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 지급집행을 내년으로 늦출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리포트('세수부족=추경' 공식,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를 통해 이같이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남은 8~12월 세수규모가 작년과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올해 세수부족분은 49조 9000억원으로 추산된다"며 "8월31일까지 실시된 법인세 중간예납 결과가 부진하면 남은 기간 세수도 작년 수준을 하회, 세수부족분은 연간 50조원을 충분히 넘어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앙정부의 지방재정 이전을 미루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전망했다.

내국세 총액의 19.24%로 구성되는 지방교부세와 내국세 총액의 20.79%로 구성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지방으로 이전되는 대표적인 재정이다.

다만 이렇게 되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추경편성 등 비상대응이 불가피해진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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