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 노예계약 강압한 브로드컴에 과징금 고작 2백억?

2023-09-08 11:21:40 게재

조만간 공정위 전원회의 열어 제재 결론

처벌규정 약한 '거래상 지위' 남용 혐의 적용

위반 당시 법령으론 '최대 관련매출액 2%'

피해 입은 삼성전자측 민사소송 규모 주목

삼성전자에 연간 1조원대 부품계약을 강압한 혐의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앞둔 브로드컴에 부과될 최대 과징금액이 200억원 규모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법 위반 당시의 공정거래법상 처벌규정이 약했기 때문이다. 브로드컴에 적용될 공정거래법 규정상 최대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2%에 불과하다. 현재는 법이 개정돼 매출액의 4%까지 부과할 수 있다.

공정위가 브로드컴에 심사보고서(검찰의 기소 격)를 보내면서 '거래상 우월한 지위 남용 혐의'를 적용한 것도 과징금 규모를 줄였다.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를 적용했다면 관련 매출액의 최대 6%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 법령을 적용할 경우, 법원에서 '시장획정' 공방이 벌어지면 공정위가 패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란 후문이다.

오히려 피해기업인 삼성전자가 예고한 민사소송 규모가 관건이다. 삼성측은 브로드컴이 강요한 장기계약으로 적어도 3억2630만달러(약 4337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한편 지난 6일 예정됐던 브로드컴 공정거래법 위반사건 공정위 전원회의는 연기됐다. 국회 일정으로 위원 일부가 참석하기 어려워 1주일 순연했다는 것이 공정위 설명이다. 8일 공정위 관계자는 "당초에는 2차례 정도 회의를 열어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조사 착수 이후 시간이 많이 소요된 점을 고려해 전원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효성 없는 과징금 규모 = 9명의 공정위 위원들은 조만간 열리는 전원회의에서 브로드컴이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남용해 삼성전자가 원치 않는 계약을 맺었는지, 계약 내용이 불공정했는지 등을 따지게 된다.

브로드컴에 적용된 혐의는 공정거래법 제45조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이 중 제7항은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를 제재하도록 하고 있다. 벌칙조항으로는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다만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2%로 제한하고 있다. 제재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지금은 '매출의 4%'로 과징금 규모가 커졌다.

이를 적용하면 브로드컴에 대한 예상 과징금 규모가 최대 200억원대에 그친다는 게 공정위 안팎의 분석이다.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에 매년 1조원에 달하는 부당계약을 체결했지만 논란 끝에 1년 정도만 유지됐기 때문이다. 반도체 설계 관련 글로벌 3대 기업으로 꼽히는 브로드컴은 시총 규모가 삼성전자와 맞먹을 정도로 크다. 8일 기준 브로드컴의 시가총액은 3537억달러(약 472조1898억원) 규모다. 200억원 남짓한 과징금으로서는 사실상 제재 실효성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브로드컴 시총규모만 472조 = 브로드컴의 혐의에 비해 과징금 규모가 작아진 것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탓이란 지적도 나온다. 공정거래법 제5조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남용 혐의를 규제하고 있다. 이 조항을 적용하면 과징금을 최대 관련 매출액의 6%까지 부과할 수 있다. 과징금 규모가 3배 이상 커지는 것이다.

다만 이 혐의를 적용하려면 브로드컴이 관련 시장에서 독점기업임이 인정되어야 한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거나 3개 기업이 함께 시장의 75%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삼성전자에 납품한 휴대폰 통신칩셋의 경우 당시 브로드컴이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했다. 하지만 공정위 사무처는 이 문제가 법원까지 갈 경우, '휴대폰 통신칩셋'만을 단독시장으로 인정할지 여부에 자신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과징금 규모는 약하지만 혐의입증이 상대적으로 쉬운 공정거래법 45조를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수천억대 민사소송? = 이 때문에 공정위 조사 착수 뒤 3년 가까이 시간을 끌고도 실효성 있는 제재를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브로드컴 입장에선 한국시장에서 갑질을 하고도 '푼돈 과징금'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공정위 제재결정이 나오면 이를 근거로 수천억원대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삼성전자 측은 브로드컴이 강요한 장기계약으로 3억2630만달러(약 4337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불공정계약이 이뤄지던 시기는 브로드컴이 독점하던 칩셋 시장에 퀄컴이 도전장을 낸 시기"라고 말했다. 신규 진입자인 퀄컴이 가격경쟁을 벌이자 브로드컵이 휴대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에 장기·과다구매 계약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전직 공정위 관계자도 "당시 삼성전자는 거래처 다변화를 위해 가격이 싼 퀄컴으로부터 일부 부품을 들여올 것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브로드컴이 연간 사용량을 훨씬 초과하는 물량을 구매하는 계약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당시 삼성전자는 칩셋을 과다구매해 상당한 재고까지 떠안게 됐지만, 브로드컴측의 횡포를 염려해 제대로 항의도 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3년 전 조사착수 했지만 = 한편 '브로드컴 노예계약 사건'은 3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20년 브로드컴의 경쟁업체인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의 신고로 공정위가 사건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 조사결과 삼성전자는 2021년부터 3년간 브로드컴의 부품을 매년 7억6000만달러(약 1조150원) 이상 구매하고, 실제 구매 금액이 그에 못 미치면 차액을 브로드컴에 배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공정위 심사관측은 브로드컴이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 불공정한 수단으로 삼성전자에 불리한 계약을 강요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제재가 임박해지자 지난해 7월 브로드컴은 동의의결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공정위는 브로드컴과 협의해 200억원 규모 반도체 상생 기금 조성을 골자로 하는 동의의결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자사 피해 구제가 미흡하다'며 반대하자 지난 6월 동의의결안을 기각하고 제재를 위한 심의 절차를 재개했다.

동의의결은 사업자 스스로 시정조치, 피해구제 방안을 마련하면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성홍식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