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가자지구 인도주의 '이중잣대'

2023-10-19 10:56:18 게재

바이든 이스라엘 방문 뒤 "구호품 안 막을 것" … 유엔 안보리에선 결의안 반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충돌로 극심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해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태도가 논란을 부르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통한 구호품 전달을 막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가자지구 남부와 이집트 국경을 잇는 '생명줄' 라파 검문소를 통한 구호품 전달이 조만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회담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담 개시 모두발언에서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와 관련, "(이스라엘군이 아닌) 다른 쪽 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텔아비브 A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취재진과 만나 "가자 지역 민간인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인명구호 지원 전달에 합의하기 위해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귀국길 기내에서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통화한 뒤 "그는 우선 최대 20대의 트럭을 (라파검문소로) 통과시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총리실도 이날 내각 결정문을 발표하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이집트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 공급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가자지구에는 오직 식량과 물, 의약품만 들어갈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해당 보급품이 하마스의 손에 들어가지 않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이스라엘 이집트의 이 같은 결정은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면봉쇄와 지상군 투입을 앞두고 교전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인도주의적 위기가 극심하다는 지적이 커지면서 내려졌다.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하마스의 이스라엘 선제공격을 비난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전면봉쇄에는 비판과 우려를 제기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날 미국은 라파 검문소를 통한 구호품 전달은 겨우 숨통을 터 주면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회부됐던 결의안은 거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유엔 안보리는 18일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 허용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논의했으나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하지 못했다. 의장국인 브라질이 제출한 결의안 초안에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민간인을 향한 모든 폭력 행위를 규탄하고, 가자지구로의 인도주의적 구호 접근 허용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결의안 투표에서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12개국이 찬성표를 던졌으나,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부결됐다. 러시아와 영국은 기권했다. 결의안이 통과하려면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표결 후 "식량과 의료품, 식수, 연료가 최대한 빨리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것은 중요하다"면서도 "이스라엘의 자위권 언급이 없는 결의안 초안에 미국은 실망했다"라고 거부권 행사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안보리는 브라질이 제출한 결의안 표결에 앞서 러시아가 제출한 2개 수정안에 대해서도 표결을 진행했으나 미국의 거부권 행사와 가결 정족수 부족으로 2건 모두 부결됐다.

러시아는 브라질 제출 초안에 가자지구 내 민간인 공격에 대한 규탄 문구를 추가한 수정안과 휴전 문안을 추가한 수정안을 각각 제출했지만 9개국 찬성을 얻는 데 실패했고, 미국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러시아는 지난 16일에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인도주의적 휴전과 인질 석방, 인도주의 구호물자 접근 허용 등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으나 채택에 실패했다.

이후 안보리는 물밑에서 이견을 좁히면서 의장국인 브라질 제출안에 관련 내용을 담는 노력을 해왔지만 '이스라엘 자위권 보장' 문구를 넣기를 원하는 미국의 반대로 결국 실패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미국에 감사를 표했지만 중국은 이번 조치를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묘사했고, 러시아는 미국의 이중 잣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또 G7 회원국인 일본과 프랑스가 결의안을 지지함으로써 미국과 결별했다고 설명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지원을 기다리는 매 순간 주민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면서 "(주민들은) 생명을 구할 물품에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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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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