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물가 급등 … 경제부처 최대현안 떠올라

2023-10-25 10:49:35 게재

실질임금 하락하는데 먹거리물가는 7%대 올라

총리부터 장차관까지 물가현장 찾아 '총력대응'

이-하마스 전쟁에 글로벌 공급난까지 '역부족'

먹거리 물가가 급상승하고 있다. 식비 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은 더 어렵다. 지난해 고물가로 가계 실질소득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제유가까지 들썩이고 있다.
농축산물 수급 및 생활물가 점검 | 김병환 기획재정부 차관이 24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 소재 농협 하나로마트를 방문해 매장을 시찰하며 주요 농축산물 수급 현황과 생활물가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경제부처에는 비상이 걸렸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부처 장차관들은 연일 민생현장을 찾아 '범부처 총력대응'을 다짐할 정도다. 정부도 먹거리 물가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흐름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먹거리 물가에 큰 영향을 주는 국제유가는 상승세로 반전했다. 산유국이 몰린 이스라엘 분쟁이 길어지면서다.

25일 현재 두바이유는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국제금융센터는 이 분쟁이 이란 등 중동국가로 확산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장으로 달려간 장차관들 = "각 부처는 민생 안정을 위해 고물가·고금리와 전쟁을 한다는 각오로 임해 주기 바란다." 24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이다.

이날 각 정부 부처는 유통 현장을 찾아 물가를 점검하고 가격 안정 협조를 요청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를 마친 뒤 서울 마포농수산물시장을 찾아 배추 등 식료품 물가를 점검했다.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의 의견도 들었다. 한 총리는 각 부처 장차관에게 "현장을 자주 찾아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 순방에 동행해 장관이 부재중인 기획재정부는 차관이 나섰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도 이날 서울 도봉구 창동 하나로마트를 방문, 식료품 가격을 점검했다. 김 차관은 "대파와 생강 등 가격이 상승한 김장 채소에 대해 산지농협의 납품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석유 가격 안정을 위해 범부처 석유시장 점검단을 가동한다고 밝혔다. 점검단은 석유시장 가격 현황과 물가 영향 등을 점검하고 주유소 등의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해 기름값 안정에 나설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이날 설탕, 달걀 유통 현장을 방문해 가격 안정을 당부했다. 농식품부 권재한 농업혁신정책실장은 CJ제일제당 인천1공장을 방문해 설탕 재고 상황을 점검했다. 권 실장은 "제당업계가 내년 초까지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할 계획인 만큼 제과·제빵 등 설탕 수요 식품의 제품 가격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식량정책실장도 이날 오후 경기 평택시에 있는 계란유통센터를 방문 "소비자가격 안정을 위해 공급을 확대해 장바구니 물가 부담 완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총선 민심도 고려 = 정부가 적극적인 물가 안정책을 펴는 데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본격적인 '민생 경쟁'에 돌입한 것도 영향을 줬다.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선거에서 중도층 민심이 중요한 만큼 앞으로도 민생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통계 포털에 따르면 대표적인 먹거리 지표로 꼽히는 가공식품과 외식물가의 2분기 상승률은 각각 7.6%와 7%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3.2%의 두 배 넘는 수치다. 10% 이상 오른 라면·빵 등 가공식품의 경우 안 오른 품목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격은 그대로지만 포장 속 내용물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외식물가도 급상승세다. 짜장면 한 그릇은 7000원이 넘은 지 오래다. 줄줄이 오르는 설탕과 소금값에다 전기료·가스료·인건비 등이 외식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먹거리 물가 상승은 특히 저소득층에 직격탄이다. 2분기 기준 우리나라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383만1000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2.8% 줄었다. 가처분소득은 전체 소득에서 이자와 세금 등을 빼고 소비나 저축에 쓸 수 있는 돈을 말한다. 한마디로 주머니 사정은 나빠졌는데 생계용 물가만 오르는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뾰족한 대책 안보여 =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농산물 수급 안정이나 유류세 인하 연장 조치 정도다. 김장철을 맞아 배추 2900톤을 방출하고 생강·대파 등 김장 부재료 가격을 안정시키기로 했다. 물가가 올라도 사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셈이다.

향후 물가도 불안하다. 세계 경제가 둔화하는 가운데 터진 중동전쟁은 최대 변수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모든 물가를 올리기 때문이다.

먹거리 가격에 큰 영향을 주는 설탕과 국제 밀가격 흐름도 상황이 좋지 않다.

특히 국제 설탕가격이 급등하면서 설탕값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슈거플레이션(Sugarflation)'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국제 설탕가격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8.4% 상승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설탕가격지수는 162.7p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160p를 넘어섰다. 지난 13일 기준 설탕 거래가격은 톤당 727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0%나 올랐다. 보통 6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가격에 반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설탕가격은 가공식품 가격과 연동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하반기 설탕가격 상승분은 2011년 상반기 제당(설탕 제조) 물가를 30.0%나 끌어올렸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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