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도 없다 … 가자지구 보건재앙"

2023-11-01 10:33:21 게재

WHO·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들 "먹을 물 공급 5% 뿐" … "공습에 사망·실종 1만여명"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보복 공습이 3주일 넘게 이어져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8300명을 넘어선 가운데 현지의 공중보건 위기가 재앙적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국제기구들의 경고가 나왔다.

지난 3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 주택을 공격한 현장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수색을 벌이고 있다. 가자지구 내무부는 이 공격으로 400명이 사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크리스티안 린드마이어 세계보건기구(WHO) 대변인은 31일(현지시간)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자지구에서는 대량 이주에 따른 과밀화, 식수부족 및 각종 인프라 손상으로 공중보건 재앙이 임박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린드마이어 대변인은 "가자지구 주민들 가운데에서는 포격 등 공습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보건 문제로 사망하는 사례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회견에 함께 참석한 제임스 엘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대변인은 "가자지구의 물 생산량이 정상적인 수준의 5%에 불과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탈수로 인한 어린이 사망, 특히 영아 사망 위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면서 "어린이들이 깨끗한 식수를 얻지 못한 채 소금물을 마셔 병에 걸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 HA)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 가자지구로 공급되는 식수 배관은 지난 8일부터 끊겼다. 이달 15일부터는 가자지구 남부로 식수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이 재가동됐지만 전날 알 수 없는 이유로 물 공급이 중단됐다.

이스라엘은 지난 29일 팔레스타인 수자원청에 두 번째 파이프라인을 다시 열겠다고 알렸지만, 이를 위한 배관수리 작업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여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가자지구 북부로 연결되는 또 다른 파이프라인은 아예 끊긴 상태다.

이날 현재 식수를 얻을 방법은 국제기구들이 제공한 비축유로 담수화 시설을 돌려 물을 생산하거나 현지 활동가들이 구호품 트럭에 물을 실어 전달하는 방법이 전부다. 엘더 대변인은 "가자지구에서는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이 필요하다"면서 "물과 식량, 의약품, 연료가 접근할 수 있도록 가자지구에 진입할 모든 통로를 개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가자지구의 식수난이 재앙 직전의 상태라는 경고는 하루 전인 30일 캐서린 러셀 유니세프 총재로부터도 나왔다. 러셀 총재는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식수가 바닥나 "200만명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있다"면서 인도주의적 휴전 결의안 채택을 촉구했다고 미 CNN 방송이 전했다.

그는 "가자에 있는 6개의 모든 폐수처리시설은 연료나 전력 부족으로 작동을 멈췄으며, 단 하나의 담수처리시설은 5% 수준으로밖에 작동하지 않고 있다"면서 생명수 공급이 복구되지 않으면 더 많은 민간인들이 탈수나 수인성 질환으로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셀 총재는 식수난에 더해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서안의 모든 어린이들이 전쟁으로 "끔찍한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다며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조치를 호소했다.

그는 "유니세프는 모든 어려움에 처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가자지구의 봉쇄 상황과 직원들의 위험한 근무 환경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전달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의료 시설마저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세계보건기구 발표도 나오면서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제 사회 목소리는 더 커졌다.

WHO는 이날 성명문에서 지난 7일 이후 가자지구의 의료 시설에 가해진 공격으로 최소 491명이 사망하고 372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 중 근무 중에 목숨을 잃은 의료 시설 종사자는 최소 16명이며 부상자는 30명이라고 WHO는 말했다.

WHO는 가자지구 의료 시설에 가해진 공격은 총 82건으로, 28대의 구급차와 36곳의 의료 시설이 피해를 입었다고 집계했다.

이날 OCHA가 공개한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지역의 적대행위 보고서'에선 지난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개시 이후 가자지구 내 사망자가 8309명으로 집계됐다. 유엔이 이 보고서를 공개하기 시작한 지난 27일에 사망자가 7028명이었는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진입을 본격화한 나흘 새 1000여명이 추가로 숨진 것이다.

특히 숨진 이들 중 어린이(3747명), 여성(2062명), 노인(460명) 등 약자가 전체의 75.5%를 차지해 재앙적 참사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주로 건물 잔해에 깔린 실종자도 어린이 1050명을 포함한 1950명으로 집계돼 가자지구 내 실제 사망자는 1만명을 넘었을 개연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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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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